의자가 없어졌다
이형국
어쩌다가/ 달랑 그 꼴인가// 나 한창때, 너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겸손한 자세로/ 줄지어 있었다/ 가다가 멍하니 서 있어도, 흔들흔들 졸아도 너는/ 기다렸다가 나를 앉혔다// 어느 날 문득 돌아다보니/ 다 없어지고 달랑 이 작고 낡은 너 하나만 남아 있구나/ 의리도 없이 어디에 숨었다가/ 또 다른 나를 앉혀 놓고 사라졌는가// 꿈은 오늘도 배란을 위해 외마디 비명을 질러 대지만/ 소스라쳐 깨어나면/ 동그마니 침대 위로 정리 안 된 꿈을 내려놓고/ 바람이 지나간다/ 난 혼자일 뿐, 그는 어디에도 없다// 내가 쓴 시와/ 펜의 유령!
『왈추를 추다』(2016, 북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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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편은 거창한 관념이나 낯선 언어의 실험에서 출발하기보다, 한 인간이 오래 살아오면서 몸과 마음에 새긴 생활의 흔적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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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적 관심은 대체로 지나간 시간, 늙어가는 육체, 병(病)과 우울, 일상과 비일상으로 읽힌다. 이러한 대상들은 단순한 추억의 소재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질문이자, 어떻게 기억되고 사라지는가를 묻는 실존적 매개가 된다. 그의 시편은 '슬픈고도 아름다운 서정의 노래'가 빼곡하다. 사물을 시에 투영시킨 실루엣이 몽환적이다.
이형국(1953~, 경북 서포항)의 「의자가 없어졌다」는 늙음과 고독, 창작의 상실감을 '사라진 의자'라는 일상적 사물을 통해 드러낸 멋진 작품이다. 의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한때 나를 받아 주었던 세계의 자리, 타인과 꿈과 시가 머물던 존재의 받침대이다. 그에게 의자는 젊은 시절의 가능성, 관계, 기회, 꿈의 자리로 환유된다. 그러나 어느 날 돌아보니 의자들은 모두 사라지고 "작고 낡은 너 하나"만 남아 있다. 이 낡은 의자는 화자 자신의 육체이면서, 마지막까지 남은 시의 자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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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사람도 떠나고 꿈도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하나의 좌석-곧 자기 존재와 창작의 자리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하다. 이형국에게 시란 "또 다른 나"의 분신이며, '의자'의 다른 이름이다. 의자가 그렇듯, 시간은 한 사람의 자리를 영원히 보존하지 않는다. 한 인간이 떠난 자리에는 언제나 다른 존재가 앉게 마련이다. 시로 은유된 '의자'를 통해, 그는 자신의 쓸쓸함을 토로하고 있다. 존재론적 상실을 지나치게 무겁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삶에 대한 서운함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것이 '시'다. 그에게 시가 빠져나간 자리는 고독한 의자이다. 부재를 확인하는 장소이자, "어디에도 없"는 외로움이 된다. 하여, 그는 "내가 쓴 시와/ 펜의 유령!"을 만난다. 그것은 한때 자신 안에서 뜨겁게 살아 있던 시심이며, 자유롭게 문장을 낳던 펜의 힘이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실제의 시가 아니라, "내가 쓴 시"의 기억과 "펜의 유령"뿐이다. 역설적으로, 시가 사라졌다고 탄식하는 이 작품 자체가 한 편의 시다.
김동원 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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