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김무늬 감독의 ‘벽 너머에’ 스틸컷. 사진=세이브더칠드런 제공
2013년 울산에서 여덟 살 아이가 계모의 폭행으로 숨졌다.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폭행으로 아이의 갈비뼈가 부러졌다. 이 사건을 비롯한 잇단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계기로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됐다. 이른바 ‘서현이법’이다.
부모가 자녀를 체벌할 근거로 오인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민법상 ‘징계권’ 조항도 2021년 삭제됐다. 법무부는 당시 징계권 삭제를 통해 체벌 금지의 취지를 명확히 한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가 아이를 때리는 일을 ‘훈육’이 아닌 폭력이라 받아들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그 무렵부터 아동 폭력 근절을 주요 사업으로 다뤄왔다. 2015년 처음 연 아동권리영화제의 첫 주제로 ‘체벌’을 택한 것도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였다.
영화제는 이후 11년 동안 아이를 단순히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생각하고 질문하고 선택하는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영화를 소개해왔다. 올해 12회를 맞은 아동권리영화제는 오는 31일 처음으로 서울 이촌한강공원에서 야외 영화제를 연다. 슬로건은 ‘아이의 눈으로 세계를 보다’다.
● 37만 명이 ‘아이의 눈’으로 봤다
2020년 제6회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영화제 단편영화 공모 대상작 ‘작은별’(김유빈 감독)의 한 장면. 가난하지만 꿈만큼은 가난하지 않은 아이의 이야기다. 사진=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아동권리영화제의 출발.은 아동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도, 해마다 달라지는 주제도 여기서 시작한다.
2015년 ‘체벌’에서 출발한 영화제의 관심은 .차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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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할 공간과 놀이, 아이가 던지는 질문과 상상력 등이 영화제의 주제가 됐다. 최근에는 ‘태어난 모든 존재를 위한 놀이터’, ‘우리의 질문이 세상을 구한다!’, ‘상상력의 힘’ 등을 내걸었다.
지난 11년 동안 온·오프라인 누적 참여자는 37만2020명에 달한다. 4368차례 상영과 교육이 열렸고, 국내외 영화 188편이 관객을 만났다.
영화제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학교와 아동시설 등에서 공동체 상영을 열고, 아동권리 교육 프로그램 ‘씨네아동권리학교’를 통해 영화 속 이야기를 권리 교육으로 연결한다.
단편영화 공모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과 권리를 다룬 작품이 모인다. 올해는 역대 가장 많은 312편이 출품됐다. 전문 심사위원뿐 아니라 아동 심사위원도 수상작 선정에 참여한다.
● 순수하지도 나약하지도 않은 아이를 그린다
2024년 제10회 아동권리영화제 대상작 ‘영화로운 작음’(권예하 감독)의 한 장면. 권 감독은 열 살 때 남수단에서 겪은 내전과 그 뒤 가족이 보낸 시간을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사진=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영화제는 영화 속에서 아이를 어떻게 그리는지도 중요하게 본다. 아동을 늘 순수하거나 나약한 존재로만 묘사하면 아이가 실제로 겪는 고민과 갈등, 스스로 내리는 선택이 가려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올해 심사에서도 △주목받지 못한 아이의 이야기를 비추는지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사회 구성원인 아이의 고민과 선택을 담았는지를 살폈다. 학대나 폭력, 차별을 다룬 작품은 자극적인 장면에 기대지 않고 아이의 상황을 신중하게 표현했는지도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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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영화의 소재에 머물지 않는다. 영화계 전문가와 함께 아동 심사위원이 작품을 직접 심사한다. 아이의 이야기를 어른의 시선으로만 판단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올해는 18세 미만 아동이 직접 연출한 작품에 주는 ‘아동감독상’도 신설했다. 이전에도 아동 감독 작품이 주요 상을 받았다. 2024년 대상작 ‘영화로운 작음’은 권예하 감독이 고등학교 3학년 때 만든 다큐멘터리다.
권 감독은 열 살이던 2016년 남수단에서 가족과 함께 내전을 겪은 뒤 한국 대사관의 도움으로 현지를 빠져나왔다. 영화는 전쟁으로 잃어버린 일상과 그 이후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온 가족의 시간을 되짚는다.
● “이 아동들도 자신만의 성장영화를” 오리지널필름 제작
세이브더칠드런의 첫 오리지널 필름 ‘이세계소년’의 한 장면. 사라진 아이 지우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살펴보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유튜브 갈무리
세이브더칠드런은 완성된 영화를 찾아 소개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영화감독과 함께 아동의 이야기를 직접 제작하고 있다. ‘오리지널 필름’ 프로젝트다.
첫 작품은 영화제 10회째였던 2024년 김성호 감독과 만든 ‘이세계소년’이다. 자기 별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며 사라진 아이 지우와 그를 찾는 형사의 이야기를 그렸다. 형사는 주변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으며 자신이 몰랐던 지우의 모습을 발견한다.
김 감독은 기획의도에서 “아이의 다양한 특성을 장애라는 벽 안에 가두지 말고 저마다의 개성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을 영화에 담았다”고 밝혔다.
세이브더칠드런의 두 번째 오리지널 필름 ‘3학년 6반 졸업영상_V14’ 스틸컷.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올해 선보이는 두 번째 오리지널 필름은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연출한 윤단비 감독의 ‘3학년 6반 졸업영상_V1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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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배경아동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오는 31일 야외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다.
주인공 소피아는 학교에서는 한국어를, 집에서는 러시아어를 쓰는 열여섯 살 아이다. 반 친구들의 졸업영상을 맡아 캠코더로 마지막 학창 시절을 기록하지만 정작 자신은 늘 카메라 뒤에 머문다.
세이브더칠드런의 두 번째 오리지널 필름 ‘3학년 6반 졸업영상_V14’ 스틸컷. 카메라를 든 소피아(왼쪽)가 친구 니카(오른쪽)을 찍으며 웃어보이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졸업영상을 만드는 동안 소피아는 한국어 발음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 니카와 가까워지고, 엄마와의 갈등 속에서 자신이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가족의 시간도 마주한다.
소피아와 같은 아이들은 영화 밖 교실에도 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의 ‘2026년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올해 4월 1일 기준 이주배경학생은 21만838명이다. 전체 학생 100명 가운데 약 4명꼴이다.
윤 감독은 “이주배경아동이라는 이름을 대표하는 인물을 만드는 대신 직접 만난 아이들의 생동감을 그대로 담고 싶었다”며 “이주배경아동들도 자신만의 성장영화를 가지고 싶을 거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2024년 11월 1일 메가박스 성수에서 열린 ‘제10회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영화제’의 모습. 사진=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영화제 당일에는 ‘3학년 6반 졸업영상_V14’와 애니메이션 단편영화를 상영하고 공모 선정작을 시상한다. 이주배경아동을 다룬 작품에 주는 ‘올해의 주제 특별상’과 아동이 직접 연출한 작품을 위한 ‘아동감독상’도 새로 마련됐다.
현장에서는 어른이 무심코 건넨 말이 아이에게 어떤 상처로 남는지를 시각화한 ‘그리다 100가지 상처’ 전시와 함께 포토부스, 메시지 카드 만들기, 캐리커쳐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강공원을 찾지 못하는 관객은 11월 한 달 동안 온라인 영화제와 공동체 상영을 통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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