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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메이로의 ‘증언의 천사들’(2019). <아트선재센터>
일본의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들이 도쿄 거리에서 전쟁 범죄를 증언한다. 마을의 무고한 사람들을 소총으로 쏘아 죽인 일에서 여성 품에 안긴 아기를 산 밑으로 던져 그 여성마저 뛰어내리게 한 동료 병사들을 방관한 일까지. 이들의 입을 빌려 되살아나는 증언은 중일전쟁에 참전했던 곤도 하지메의 고백이다. 정작 증언의 당사자인 곤도는 99세가 돼 자신이 저지른 폭력의 기억조차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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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메이로의 ‘증언의 천사들’(2019).
다빈치릴게임
<아트선재센터>
일본 작가 고이즈미 메이로가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 ‘고이즈미 메이로: 불, 어느 아카이브’를 통해 한국 관람객들과 만난다. 전시의 중심 작품인 ‘증언의 천사들’은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참전 군인의 증언을 암기해 낭독하는 모습을 담았다. 왼쪽과 오른쪽 화면에서는 청년들이 민간인 학살과 성폭력 등 전쟁 중 벌어진 일을 낭독하고, 가운데 화면에서는 증언의 당사자인 곤도 하지메가 인터뷰에 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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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메이로의 ‘증언의 천사들’(2019). <아트선재센터>
곤도는 과거에 자신이 증언했던 폭력 행위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전히 전쟁에 대한 꿈을 꾼다며 인터뷰 끝에 눈물을 흘린다. 그는 “일본 병사들이 중국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알아달라. 이것은 50년, 100년을 사죄해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청년들의 입을 통해 되살아난 과거와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의 모습이 교차한다. 개인의 기억이 사라진 뒤에도 역사적 책임이 남는 것을 보여준다.
바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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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일본군의 잔혹함이 사회에서 잊히고 있기 때문에 일본인으로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며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고, 다시는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 이 작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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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메이로의 ‘불을 가져오는 프로메테우스’(2023). <아트선재센터>
과거의 폭력을 되짚는 ‘증언의 천사들’과 달리 가상현실(VR) 설치 작품 ‘불을 가져오는 프로메테우스’는 기술이 열어갈 미래와 그 안에 담긴 희망을 이야기한다. 작품은 인간의 눈에 나비의 망막 세포를 도입해 기존의 시각으로는 볼 수 없던 세계를 지각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한다
손오공게임장
. 작가는 이를 통해 과학기술이 인간의 신체와 감각을 확장하고,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까지 바꿀 수 있다고 상상한다. VR 기기를 쓰고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은 마지막 장면에서 손바닥 위에 따뜻한 불이 놓이는 듯한 경험을 한다.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희망의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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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메이로의 ‘비의(秘儀)’(2026). <아트선재센터>
신작 조각 ‘비의’는 기술의 진보가 인간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되묻는다. 자동차 엔진과 인간의 몸을 본뜬 레진을 결합한 작품으로, 팔이 여섯 개 달린 불교의 아수라상을 연상시킨다. 기술과 도구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려는 인간과 그 과정에서 인간이 잃을 수 있는 것을 함께 드러낸다.
작가는 “물질 문화 속에서 우리는 온갖 도구와 기술을 사용해 우리 자신을 뛰어넘으려는 욕망을 드러낸다”며 “그 모습을 불상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상에는 많은 손이 달려있는데, 보통 이것이 사람들을 돕기 위한 손이라면 내 작품의 손은 오히려 도움을 요청하는 손”이라고 밝혔다.
전쟁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는 시도부터 기술과 결합한 신체의 변화까지, 작가는 인간의 몸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지키며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지 묻는다. 전시는 12월 27일까지.
고이즈미 메이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