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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기자말>
[한재아 기자]
ⓒ flickr
어린 할부상환방식 날의 기억 중 설날은 항상 바쁘고 북적북적한 날이었다.
전날 이른 오후부터 거실에는 은박 돗자리가 깔렸고 전을 굽는 대형 프라이팬이 세팅됐다. 싱크대와 팬 옆에 재료가 하나둘씩 준비되고 팬에 불을 올리면 그때부터 집 안에는 기름 냄새가 가득해졌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밀가루옷을 입은 감자와 고구마, 달걀물을 머금은 동그랑 주거래은행 땡과 동태전, 버섯과 애호박, 두부를 구우면 옆에 있던 나는 달력이 깔린 소쿠리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음식들을 보기 좋게 정리하는 담당이었다.
음식이 채워진 소쿠리가 하나둘 늘어나고 재료가 담겨있던 그릇이 하나씩 치워지면 할머니는 밀가루옷을 입히고 남은 반죽에 대파와 양파를 썰어 넣고 파전을 만드셨다. 남은 달걀물은 크게 부쳐 달걀말이나 우리은행 적금 추천 지단을 만들기도 했고, 가끔은 밀가루 반죽만 부쳐 간장에 찍어먹는 밀가루전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전을 부치느라 사방에 튄 기름을 닦고 팬을 치우고 돗자리를 걷어내면 작은 방에 소쿠리를 옮겼는데, 이때쯤이면 그 방에는 항상 각종 과일과 약과, 유과, 떡 등등이 검은색 비닐봉지에 담겨 쌓여 있었다. 정리가 끝나고 저녁을 먹을 때는 그 날 만 폭스바겐 파이낸셜 든 전이 반찬으로 올라오기도 했는데 가장 맛있는 건 역시 방을 지나다니면서 하나씩 집어 먹는 감자전과 동그랑땡이었다.
설 당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상을 차리시는 어른들을 도와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했다. 제기를 닦아 음식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방까지 배달하다 보면 풍기는 음식 냄새에 잠이 깰 때도 있었다. 카드론 상환 준비가 끝나고 나면 남은 딸기같은 과일을 입에 넣고 거실에서 꾸벅꾸벅 졸며 시간을 보냈다.
친척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도착하는 소리가 들리면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서 인사를 드리고 방으로 들어가고는 했다. 친척 언니와 오빠들이 오면 방이 꽉 채워져 가끔은 테트리스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예전에는 좁은 집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걸까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집이 큰 집이기 때문이라는 슬픈 사실을 알게 됐다.
제사가 끝나고 나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는 테이블 여러 개가 거실에 차려져 친척분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각종 나물과 양념장을 넣고 참기름을 두른 밥과 홍합이 들어간 탕국을 자리마다 놓아두고 삶은 고기는 얇게 잘라 김치와 함께, 두툼하게 썰린 문어 숙회는 초장이 담긴 그릇과 함께 올렸다. 그외에도 차례상에 올라갔던 각종 전과 구운 조기, 잡채, 나물까지 두고 나면 테이블에 둘러앉아 다같이 식사를 시작했다.
▲ ?설 연휴를 앞둔 1월 24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돈암시장 내 황해도떡집에서 상인들이 떡국떡을 포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리고 2020년, 대바이러스 시대가 시작되면서 처음으로 설날을 조용히 보냈다. 유교적인 할아버지에 의해 제사는 지냈지만 전보다 훨씬 간소화됐고, 가족끼리만 보내니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오히려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설 전에는 차례상에 올라갈 음식과 식사 음식을 한 번에 준비하면서 만들어야 할 양도 많았고, 종류도 다양했다. 문제는 그 모든 일을 할머니와 어머니 두 분이 해결하셨다는 점이다. 때문에 어렸을 때는 시끌벅적한 명절이 마냥 좋기만 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차례를 준비하는 일이 중노동으로만 보여 피곤하기만 했다. 친척분들이 돕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차례를 지내는 집이 우리집을 포함해 3곳이나 있었기 때문에 그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명절이나 차례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차례상을 차릴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거기다 올해는 명절을 얼마 남기지 않고 할머니께서 스텐트 시술을 받으시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올해 설날은 조금 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적북적한 명절의 모습은 분명 소중한 추억이지만, 이제는 제사 준비로 분주한 대신 편하게 자고 일어나 여유롭게 밥을 먹고 휴일을 만끽하며 영화를 보거나 놀러나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아, 그래도 떡국은 먹어야겠지만.
《 group 》 XMZ여자들 : https://omn.kr/group/XMZ2023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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