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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도 명동의 땅 한 평과 강원도의 땅 한 평 값이 다르듯 1년 중 어떤 날은 다른 날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1월 1일에 맞춰 결심한다고 그 효과가 더 커지는 건 아니라는 의견일 뿐이다. 10여 년 전 담배를 끊을 때도 나는 ‘이젠 정말 금연해야지’ 생각한 바로 그날 저녁부터 담배를 끊었다(금단증상에 시달려 고생한 얘기는 눈물겹지 인터넷뱅킹학자금대출 만 다음 기회에 할게요).
동네 친구들을 집에 불러 마시던 날. 새해엔 술을 줄일 것이다. /편성준 제공
그런데 지난 12월 초에 비상계엄 사태로 큰 스트레스를 받은 아내가 “내년에는 술을 좀 덜 마셔야겠어. 술만 신혼부부 특별공급 마시고 책 안 읽으면 누구처럼 된다는 말이 돌아다니잖아?”라며 전격 금주를 제안했다. 아내의 말에 공감했지만 약간 걱정도 되었다. 친구들이 우리 결심을 전해 듣는 순간 놀리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우리 커플은 ‘혹시 금주가 취미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금주 선언을 자주 했다. 아내는 소주 한 병이 치사량이라 금세 취하는데도 새마을금고 1년적금 기분 좋은 술자리가 있으면 선을 넘었고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페이스북 담벼락에다 ‘내가 다시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곤 했다. 그러다 며칠 지나 내가 한잔하자고 꼬시면 언제 금주 선언을 했냐는 표정으로 다시 술잔 앞에 앉기를 반복했다.
이런 나도 실제로 술을 끊은 적이 있었다. 4년 전 회사 생활을 전격적으로 접 학자금대출원금균등 었을 때부터 6개월 동안 술을 안 마셨다(물론 아주 안 마신 건 아니었다. 음주 티켓을 세 장 발행해 정말 중요한 술자리엔 참석했다. 그런데 정말 딱 세 번이었다. 믿어주시라. 진짜다). 이유는 ‘아침에 일어나 혼자 놀기 위해서’다. 나는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데 회사 다니는 동안엔 너무 피곤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회사를 그만둔 sk c&c 이후 맞는 새벽 시간은 신세계였다. 전화나 이메일, 카톡 메신저도 울리지 않았고 아내도 자고 있으므로 나를 방해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새벽에 눈이 떠지면 부엌으로 가 물을 한 잔 마시고 마루에서 혼자 놀았다. 만약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해야 했다면 비참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회사 다닐 때나 느꼈던 슬픔과 서러움이었다. 이젠 책을 읽어도 되고 글을 써도 좋은 자유의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멍하니 창문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가끔은 고양이 순자가 와서 몸을 비비면 같이 놀아주기도 했다. 새벽에 활동이 왕성해지는 순자와 놀다 보니 새벽에만 잠깐 말을 할 수 있는 고양이를 상상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토킹캣 순자’라는 콘셉트의 성인 동화도 브런치에 연재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술이 없어야 가능했다. 술을 마시면 자연히 늦게 일어나고 컨디션도 좋지 않기 마련이다. 그룹 들국화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 바로 그런 내용이다. 기타리스트 이병우는 토요일에 친구들과 신나게 술을 마시고 일요일 오전이 다 가도록 침대에 누워 있다가 오후를 맞았던 경험을 토대로 이 곡을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아내 말의 요지는 “1년 365일 중 300일 술을 안 마셔도 65일은 마실 수 있다”였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1년이 52주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술을 마셔도 13번이나 음주 티켓이 남는 것이었다. 우리는 첫 만남도 술집이었으므로 술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술을 마시고 주정을 하거나 우는 일도 없으므로 어느 술자리에서나 환영을 받는 축이었다. 저녁노을이 지고 속이 출출해질 때쯤 눈이 마주치면 “술 한잔 어때?” “어느 술집으로 갈까?” 같은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누는 천생연분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흐르는 세월에 장사 없다고 언젠가부터 체력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4만~5만원은 깨지는 술값도 무서웠다. ‘저녁에 술 한잔 할까’라는 멘트는 어느덧 클리셰가 되어가고 있었다. 끊어야 했다.
김동식 작가가 올해 펴낸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이라는 에세이에 이런 글이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인터뷰 영상 중에 김연아 선수의 것이 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하느냐는 질문에 김연아 선수가 답한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정말 완벽한 답변이라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출근길에 작은 눈사람이 쓰러져 있는 걸 보면 그냥 일으켜 세우고 지나간다. 아무 이유 없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세우는 거다. 기찻길 선로 위로 추락한 사람을 구하려고 뛰어든 영웅들을 인터뷰하면 하나같이 똑같은 말이 나온다. 그냥 몸이 움직였다고. 난 인간의 위대한 점이 바로 이런 ‘그냥’에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안 할 이유를 찾고 할 시간에 그냥 해버리는 것 말이다.
김동식 작가의 ‘안 할 이유가 없다면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통찰은 300일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 모든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고 결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신년 1월 1일부터 윤혜자와 편성준이 ‘300일 프로젝트’를 시작함을 전국에 알리는 바입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아, 사실은 이렇게 계획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닌데. 보령으로 이사 간 것도 별 계획 없이 한 일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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