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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당면한 핫이슈를 만드는 사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도시 사무실에서 김대일 변호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위자료 청구 소송 과정과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어디 한 번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낸 소송이 절대 아닙니다. 탄핵해봐야 대통령 자리 뺏기는 걸로 끝나고, 형사법정에서 중형 선고해봐야 전두환처럼 미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언제 어떻게 사면될 지 모릅니다. 국민만 덩그러니 피해자로 남겨집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우리 국민이 권리 행사의 주체티엔엠
, 그러니까 채권자로서 상대방의 법적 책임을 묻는 이들로 직접 행동해야 한다는 게 저희 생각이었습니다. 법리적으로 가능하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판단해서 낸 소송입니다."
'이게 진짜 될 줄은 몰랐다'는 첫 질문에 되돌아온 단호한 대답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소송이란 짐작하다시피 불법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물어 104명의 시민이 윤석열 전주식리딩
대통령을 상대로 낸 1인당 10만 원씩 위자료 청구 소송이다. 이게 될까 싶었는데 지난달 25일 1심에서 완전 승소 판결이 나왔다. 승소의 파급력은 컸다. 별 대응이 없던 윤 전 대통령 측이 즉각 항소에 나서더니 위자료 집행을 막기 위한 가처분 신청도 함께 냈다. 곳곳에서 수백, 수천 명 단위로 '우리도 소송을 내겠다'는 움직임이 퍼져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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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송은 일종의 기획소송이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그리고 다음 날 새벽 계엄해제가 이뤄진 직후 분노한 시민들 사이에서 소송 가능성이 거론됐다. 탄핵과 형사처벌을 넘어 민사적 책임까지 지워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다 12월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첫 탄핵소추안 표결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집단퇴장으로 무산되면서 본격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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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7일 국민의힘 의원 105명의 집단퇴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안 1차 투표가 무산된 가운데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돌아오라"며 국민의힘 의원 이름을 한 명씩 부르자 민주당 의원들도 일어선 채 이름을 따라 외치고 있다. 고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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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당시 원내대표가 국회로 되돌아오라며 집단퇴장한 105명의 의원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짖던 장면에 착안해 원고를 105명(행정적 문제로 최종 104명)으로 제한한 민사소송을 내기로 했다. 12월 10일 소장이 법원에 제출됐다. 변호비는 무료, 위자료 청구액은 1인당 10만 원, 승소 시 받을 돈 전액은 공익기부한다는 원칙도 이때 정해졌다.
이 사건을 진행한 법무법인 도시의 김대일 변호사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원래 이 소송은 법무법인 도시의 이금규 변호사, 법무법인 이우스의 김정호 변호사 주도로 시작됐다. 이 변호사가 순직해병 특검의 특검보로 차출되면서 김 변호사가 사건을 맡았다. 1차 105명에 들지 못해 제외된 1만여 명의 추가 소송도 준비 중이다.
윤석열 비상계엄은 박근혜 국정농단보다 박정희 긴급조치를 닮았다
-고위공직자의 '기이한' 행태에 대해 형사처벌 외에도 위자료를 청구하고 인정받는다는 게 좀 놀라웠다.
"놀랄 것 없다. 우리는 당연히 그리 될 것이라 믿었다. 2022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를 통해 박정희 유신정권의 긴급조치 9호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비상계엄 또한 긴급조치처럼 법적 효력을 지닌 일종의 행정적 조치다. 두 건은 법리적으로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2022년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긴급조치권 같은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던 박근혜 정부 당시 양승태 대법원의 기존 판례를 뒤집어서 화제가 됐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CNN이 긴급 속보로 보도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패소와는 그런 의미에서 다르다는 뜻인가. (박 전 대통령 탄핵 뒤 시민 4,000여 명이 1인당 50만 원씩 총 2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맞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개인적 비리, 주변 사람들의 권력형 비리가 탄핵의 주 원인이었다. 국정농단을 국민의 정신적 피해에 직접 연결짓기는 좀 어렵다. 어떤 법적 효력 있는 조치를 취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상계엄 선포는 긴급조치 발령처럼 그 자체가 법규이자 명령으로서 효력이 발생한다. 정당의 정치적 자유와 활동이,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가 제한되고 위반할 경우 처벌받는다. 모든 국민이 영향을 받게 되어 있는 조치인데 그 조치 자체가 불법이기에 기본권이 침해당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게 우리 생각이었다."
-손해배상의 경우 보통 형사재판에서 1심 결과라도 나온 뒤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윤 전 대통령 내란에 대해 형사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인데.
"윤 전 대통령 1심 판결 이전에라도 12·3 비상계엄의 불법성은 명백하다고 본다. 전시나 사변, 혹은 그에 준하는 상황에서 군경을 동원하는 게 비상계엄인데 그 당시 그런 상황이 어디에 있었나. 그렇기에 당시 비상계엄은 위헌 위법적인 행위다. 법리적으로야 불법 비상계엄과 내란을 굳이 구분할 수도 있지만 설사 내란죄가 인정되지 않는다 해도 비상계엄 자체의 불법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비상계엄의 위헌 위법성은 헌재가 이미 확인
-비상계엄의 불법성은 윤 전 대통령의 1심 재판 결과까지 보지 않아도 인정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재판에서 이미 인정됐다. 법원이 판단할 몫이라 생각해 형법상의 내란죄까지 판단하진 않았지만 비상계엄이 불법이고 불법적인 비상계엄만 해도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결정했다. 이번 우리 소송의 1심 또한 비상계엄의 불법성 부분만큼은 명백하다고, 고로 불법행위로 인한 민사상 책임도 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1심에서 윤 전 대통령 측 대응은 어땠나.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특별한 답변도 없고 재판에도 불출석하고. 변호인단이 언론을 통해 '이건 소송의 남용'이라는 입장만 간략하게 낸 수준에 그쳤다."
지난 4월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별것 아니라 생각한 건가. 아니면 탄핵, 수사, 재판 등으로 바빠서인가.
"그건 우리로선 알 수가 없다. 여하간 대응은 없었다. 그리고 소송의 남용이라는데 그런 건 없다고 말하고 싶다. 권리구제 수단이 소송인데 어떻게 남용이 있을 수 있나."
-1심 승소가 나와서인지 이제 본격 대응하는 것 같다. 바로 항소도 하고 돈 못 가져가게 가처분도 내고. 내용상으론 항소심에서 본격적으로 다투는 셈이 되는 건가.
"형식상으로 보자면 이제 본격적으로 다툰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항소심에서 본격적으로 다툰다 한들 윤 전 대통령 쪽에서 뭘 더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미 불법성이 인정된 비상계엄을 두고 적법하고 정당했다고 입증할 수도 없을 테고. 지난해 12월 3일 즈음 전시 사변 혹은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있었다는 걸 입증할 수도 없을 테고."
비상계엄의 충격, 그 자체가 위자료 지급 사유
-2022년 대법원 판례의 피고는 국가다. 이번엔 윤 전 대통령이라는 개인이다. 같을 수 있나.
"그래서 이번 소송의 판례가 중요하다는 거다. 예전에는 군부독재라는 억압이 있었기에 그때 말 못하고 나중에 가서야 국가라는 추상적 대상을 상대로 민사적 책임을 물어야 했다면, 그보다 훨씬 민주화된 세상인 지금은 국가라는 추상적 대상보다 실질적 행위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사상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해 그때 그때 즉각적인 책임을 묻는 게 오히려 더 정의에 부합하는 게 아닐까."
-불법적 비상계엄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는 어떻게 입증해야 하나.
"어디 유튜브 같은 데 보니 병원 진단서 같은 것도 없는데 법원이 인정했다고들 하던데, 의외로 이런 부분들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있다. 정신적 피해에 따른 위자료 지급은 별도의 증명이 필요한 게 아니다. 12·3 비상계엄 선포로 인해 며칠간 잠을 못 잤다, 너무 심한 불안감이 몰려와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야 했다 같은 증명이 필요한 게 아니다. 경험칙상, 그러니까 보통의 상식으로 봤을 때 이 정도의 불법행위가 발생했다면 이 정도의 정신적 손해가 있다라고 인정될 수준이면 된다. 폭행 행위로 입원해야 했다면 병원비는 당연히 받는 것이고 그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 따른 위자료는 법원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임의로 산정하는 것과 똑같다."
지난 1월 6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촉구하는 시위대가 추운 날씨에도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위자료 10만 원이란 액수는 어떻게 정한 건가.
"최소 그 정도는 돼야 한다는 상징적 의미다. 전 국민이 평온한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국가라 평가받던 대한민국에서 어느날 갑자기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정치적 책임은 탄핵으로 지고, 형사적 책임은 내란죄로 진다면, 위법한 비상계엄을 통해 우리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부분에 대해서 민사적 책임도 져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10만 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1심에서도 이를 인정해줬다."
-이번 1심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1,000만 원 정도를 내야 한다. 1만 명이 추가로 소송하면 10억 원이다. 거기다 다른 원고들이 소송을 내기 시작하면 손배액은 자꾸 커진다. 윤 전 대통령의 본인 명의 재산은 6억 원가량이다. 물론 부인 김건희 여사 재산이 73억 원이지만.
"이번 소송은 짐작하다시피 소송을 통해 돈을 벌어보자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수동적 피해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권리행사의 주체임을 보여주자, 확인을 받아보자는 게 우리 소송의 목적이다. 손배액이 다 인정되느냐, 다 받아낼 수 있느냐는 그 다음의 문제다."
특검 수사에 따라 김건희 여사 등으로 번질 수도
-원고를 별도로 모아 별도 소송을 내게 되면 승소한다 해도 저마다 받는 손배액에서 차이가 날 수도 있겠다.
"민사소송의 특징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당장 우리 사건만 해도 1만여 명의 추가 소송에서는 위자료를 10만 원에서 1만 원으로 줄이는 걸 검토하고 있다. 아무래도 소송 규모가 커질수록 인지대 등의 부담이 커지는 현실적 문제 같은 게 있어서다. 다른 곳은 20만 원도 내고 50만 원도 낼 수 있을 것이다."
-사정이야 그렇다지만 만약 나중에 손배액이 들쭉날쭉하면 받는 사람 입장에선 이상할 것 같다.
"가능성은 낮지만 법원이 원고 동의를 얻어 들어온 사건을 한데 모아 병합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사건을 합치지는 않되 특정 법원 혹은 재판부에 몰아줘서 병행심리를 진행할 수도 있다. 아니면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어떤 결론을 내리는지 지켜보다 대법원 판례에 맞춰 적당한 수준으로 조정해서 결론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재판을 진행할 법원이 판단할 몫이다. 다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애초 이 소송 자체가 국민 스스로 주권을 행사해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권리행사에 도전해보라는 것이다. 상징적 의미의 손배액을 청구할 수도 있고, 피고에 대한 실질적 제재 수단이 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액수를 30만 원, 50만 원으로 올릴 수도 있다. 그 또한 각자의 판단이다."
지난달 9일 내란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에 대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가 끝난 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로 이동하기 위해 법원을 걸어나가고 있다. 뉴시스
-윤 전 대통령의 책임이 인정된다면 김건희 여사, 김용현 전 국방장관,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 같은 이들에 대한 소송도 가능해지는 셈인가.
"불법적 비상계엄으로 인한 손해배상이니까 비상계엄 관련성이 나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김 전 장관이나 박 전 사령관 등은 지금으로서도 가능한 구조라 생각된다. 김 여사는 앞으로 계속 진행될 특검의 수사 결과 등을 기다려봐야 하지 않을까."
-비상계엄에 동원된 군인, 특전사 군인 같은 이들은 어떤가. 군 지휘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있을까.
"가능하다. 명령을 따라야 할 군인들인데 불법명령으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것 또한 논리상 가능하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하고, 자괴감을 느낀다는 얘기가 가장 많이 나오는 집단이기도 하니까. 특히 이 분들의 경우 신분 자체가 명령에 일단 따라야 할 군인들 아닌가. 그렇게 따져보자면 일반 국민보다 더한 충격을 받았을 테니 위자료 액수가 더 높아져야 한다고 본다."
권력자의 명백한 불법행위엔 모든 책임 다 물어야
-계엄해제에, 탄핵안에 뜨뜻미지근했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어떨까.
"크게 봐서는 결국 특검 수사로 연루 정도가 확인돼야 할 것으로 본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뭔가. 대통령을 견제하고 불법적인 권한 행사를 막아야 하는 게 국회의 역할인데 계엄해제 표결이나 탄핵 표결에 어깃장을 놓은 건 이 책임을 방기한 행위다. 비상계엄을 저지른 대통령이나 군인들은 다 조사받고 처벌받는데 그걸 방기한 국회의원은 면책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과 법무법인 믿음이 지난달 31일 경남도의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를 상대로 1인당 10만 원씩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국민소송단 모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제공
-극심한 정치적 대립, 갈등으로 이어질 게 뻔한데.
"상황을 거꾸로 놓고 보면 된다. 지금 현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모종의 이유로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했는데 민주당 의원들이 계엄 해제 표결을 미적댄다? 내란 방조를 넘어 사실상 내란에 동조한 것이니 공동 책임을 지라고 하지 않겠나."
-뜻은 알겠는데 형사처벌과 연쇄 민사 소송이 과연 좋은 걸까.
"권력자의 불법행위만 해도 좋은 일이 아니다. 권력형 비리 혹은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는 정치적 책임을 묻는 선에서 끝날 수도 있지만, 이번처럼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끝까지 모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한때 권력을 잡았다는 이유로 아무렇게나 불법을 자행했다가는 큰일 날 수도 있다는 걸 각인시킬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소송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국민이 직접 책임을 묻는다는 명백한 선례가 되길 바란다."
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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