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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의 이같은 조치를 이끌어 낸 일등 공신은 김정봉 금속노조 서울동부지역지회 부지회장이다. 지난 2018년부터 주얼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활동해 온 그는 노동부 발표가 나오던 23일에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주얼리 공단 실태조사와 근로감독을 요구하며 43일째 농성 중이었다.
농성 중 찾아온 작은 행운이 힘이 됐다. 김 부지회장은 지난달 24일 인사청문 준비를 위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으로 출근하10일이동평균선
던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당시 후보자)을 우연히 마주쳤다. 김 부지회장은 즉시 다가가 주얼리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말했고, 김 장관에게 자신의 요구를 전한 '1호 노동자'가 됐다. 이에 힘입은 탓이었을까. 김 장관 취임일 노동부가 주얼리 공단 지도·감독 계획을 발표했다.
주얼리 노동자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기에 김 부지회장은 폭염 속에고전릴게임
서도 40일이 넘게 농성을 이어갔을까. 주얼리 업체 사용자들의 표적이 되는 일을 감수하면서도 그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수년째 활동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농성을 마치기 하루 전인 지난 2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그를 만나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김정봉 하이닉스주가
금속노조 동부지역지회 부지회장(왼쪽)이 지난달 24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인사청문 준비를 위해 출근하던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주 80시간 일하며 수당도 못 받고 위험약품 다루는 주얼리 노동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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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공예를 전공한 김 부지회장은 졸업 직후 주얼리 업체에 취업해 올해까지 28년 간 주얼리 노동자로 일했다. 자신이 만든 제품을 보면 재미있었고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도 있었지만, 최소한의 휴식조차 주어지지 않는 노동 조건은 견디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12시간씩 일했어요. 밤 9시에 퇴근하는황금성갈갈이
건 야근이라고도 안 했어요. 야근이면 11시까지 일하는 거였죠. 포괄임금제라 연장수당도 못 받았어요. 빨간 날 쉬지도 못했고, 연차휴가나 수당도 없었어요. 경조휴가는 있었지만 최소한이라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결혼할 때 일을 그만두고 다른 회사를 찾는 노동자도 많았어요. 퇴직금은 못 받거나 일부만 받았죠."
주얼리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은 정부의 무관심은 물론 사용자들의 '꼼수 고용'으로 가능했다. 근로기준법상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는 노동시간, 휴게, 휴일 등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통계청의 2023년 통계를 보면 국내 주얼리 업체 94.7%(1만 547개)가 5인 미만 사업장이다. 김 부지회장은 현실은 다르다고 말했다.
"주얼리 공정이 보통 땜질, 조립, 주물, 왁스, 출고, 개발, 조각, 광택 등으로 나뉘어요.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장이 90% 이상인 건 이상하죠. 수리공장은 그럴 수 있지만, 제조공장은 한 작업에 한, 두 명 씩만 고용해도 10명은 넘을 거잖아요. 실제로는 근로계약서를 안 쓰고, 5명째부터는 월급을 현금으로 주는 식으로 고용인원을 축소하는 경우가 많아요."
당연히 4대보험 가입도 어려웠다. 재직증명이 안 돼 대출이나 신용카드 발급에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도 많다. 김 부지회장도 이번 해고 뒤 또 한 번 아픔을 겪었다.
"노동부에 실업급여를 신청할 때 구직 활동을 위한 이력서를 작성하게 해요. 보고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28년 간 쉬지 않고 일했는데 그 사실을 뭐로 증명하지. 5년은 노조를 만들어서 고용보험에 가입한 기록이 있는데, 나머지 23년은 어떻게 하지' 생각이 드는 거에요. 40대의 나이에 일한 건 5년이 전부고 나머지 기간에는 일을 안 한 '유령'이 된 거죠."
안전 문제도 심각했다. 청산가리, 황산, 염산 등 각종 위험용액과 주얼리 커팅 등에 쓰이는 날카로운 장비를 다루며 일했지만, 공장에서 사용되는 물질의 정보를 알려주는 이도, 공장 내 안전을 관리하는 이도 없었다. 노동자들은 맨몸으로 위험에 노출됐다.
"생활고 때문에 힘들어하던 주얼리 노동자가 청산가리를 들고 가서 음독한 일이 있었어요. 약품 관리가 전혀 안 됐던 거죠. 제 친구는 가운데 손가락 끝이 잘렸어요. 저도 처음에는 주얼리에 광택을 내다 손에 때가 끼면 양잿물로 씻었어요. 잘 닦이니까요. 그러면 위험하다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 새카매진 주얼리 세공 노동자의 장갑(왼쪽)과 공장 내 쓰레기통에 방치된 청산가리 덩어리(오른쪽). ⓒ금속노조 동부지역지회
노동조합 만들고 변화 일궈왔지만…
2018년 4월 김 부지회장은 6명의 동료와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결심하고,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마음속에서 자라던 씨앗이 현실에서 열매를 맺은 것이었다.
"노조를 만들기 2~3년 정도 전부터 노동절에 출근하면 기분이 이상했어요. 1년에 한 번 앉아서 출근하는 날이었거든요. 텅 빈 지하철 사진을 찍다 보면, '우리도 노동자인데 왜 노동절에 못 쉴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면 쉬지도 못하고 야근하는 일도 생각나고, 친구가 손가락이 잘렸는데 월급만 받고 쫓겨난 일도 떠오르고 했어요."
노조를 만든 뒤 일주일에 두 번씩 주얼리 노동자들이 출근하는 종로 단성사 인근 지하철역에서 선전물을 돌렸다. 이를 보고 찾아 온 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조합 가입을 받고, 노무사를 초빙해 노동법 교육도 했다. 오랜 기간 노력한 결과 종로 주얼리 공단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2019년부터 노조가 '노동절에는 쉬어야 한다'고 주얼리 업체들에 공문을 보냈어요. 노동자들에게는 안 쉬는 사업장이 있으면 팩스 번호만 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러면 다시 '쉬나 안 쉬나 지켜보겠다'고 공문을 발송했어요. 이제는 공단 안에 '노동절에는 쉰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어요. 공단 전반에 퇴직금 문제를 제기해 이제는 노동자들이 퇴직금은 받게 됐죠."
정작 김 부지회장 자신은 표적이 됐다. 채용 면접에서 주얼리 노동자에게 "김정봉 아냐"고 묻는 사장들이 있었다. 지난 1월 설 명절을 앞두고 김 부지회장은 끝내 해고당했다. 4개월여 뒤 노동위원회에서 원직복직 명령이 담긴 부당해고 판정서를 받았지만, 사장은 복직 교섭 중 폐업 신고를 내고 잠적했다.
부당해고 처벌 조항이 없는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일을 해도 사장에게 손해가 없다. 기계설비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얼리 업계 특성상 재창업도 쉬운 편이다. 주얼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길이 더디고 험한 이유 중 하나다.
이를 계기로 김 부지회장은 지난 6월 12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복직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주얼리 노동자 전체의 노동조건 개선을 겨냥했다. 종로 주얼리 업체 800여 곳 중 200곳에 대해서만이라도 제대로 실태조사를 하고, 문제가 확인되면 근로감독을 해달라는 요구를 앞에 세웠다.
지난 24일 노동부는 김 부지회장의 요구에 응했다. 농성과 함께 시작한 <전태일 평전> 읽기 100번째 낭독을 한 다음 날이었다.
▲ 김정봉 금속노조 동부지역지회 부지회장이 머물던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 농성장에 부착한 주얼리 노동자 실태조사 설문지. 노조가 진행한 설문에서 대부분의 주얼리 노동자가 4대보험, 연차휴가, 퇴직금 등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프레시안(최용락)
"전에도 실태조사는 있었다…이번에는 제대로 하는지 지켜볼 것"
노동부의 주얼리 업계 지도·감독 조치 발표로 농성은 일단락됐지만 김 부지회장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노동부가 전에도 주얼리 업계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어요. 전태일 열사가 그랬던 것처럼 저희도 부푼 꿈을 꿨죠. 그게 다였어요. 근로감독은 없었고, 조사방식은 자체 신청 업체만을 대상으로 한 자율점검이었어요. 실효성이 없었죠. 이번에는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죠."
김 부지회장은 전과 달리 노동부가 '종로에 있는 주얼리 업체 전체에 자율점검 협조 공문을 보내고 회신하지 않은 곳에 대해서는 감독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했다고 전했다. 이에 다시 공단으로 돌아가 이 사실을 노동자에게 알리고 노동부가 자신의 말을 지키는지 현장에서 지켜볼 계획이다.
김 부지회장의 노력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여전히 노동부의 의지와 실행이 중요하다. 마침 새로 취임한 김 장관은 주얼리 노동자들의 상황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다.
"처음 노조를 만들고 간담회를 한 사람이 김 장관이었어요. 정의당 노동본부장일 때였죠. 그때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에게 많이 공감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제 행정적인 권한을 갖게 됐으니 할 수 있는 일을 하시면 좋겠어요."
끝으로, 김 장관을 새 수장으로 맞은 노동부에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김 부지회장은 해고 뒤 주얼리 노동자 전체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농성에 들어갔던 것처럼 이번에도 더 많은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늘 답답했어요. 중소기업청은 중소기업 사용자를 위해 일할 수도 있죠. 하지만 노동부는 노동자를 위해 일해야 하는 곳이잖아요. 정부 안에 노동자를 위해 일하는 부처가 한 곳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얼리 공단에 대한 감독이 정말 제대로 이뤄져야 하고요. 이번 조치를 기회로 노동부가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에 나서주길 바랍니다."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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