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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84. 낯설지 않은 숫자다. 아니, 오히려 너무 익숙하다. 33평의 전용면적 84제곱미터(㎡).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만 있다는 ‘국민 평형’이다. 84는 아파트로 대표되는 주거공간의 기준이자, 쉼의 공간을 순식간에 ‘투자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마법의 숫자다.
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는 서울 땅에서 딱 84만큼의 ‘공간’을 갖기 위한 이 시대 청춘의 자화상을 그린다. 그저 집이란 공간일 뿐인데, 그저 집이지도, 그저 공간이지도 않은 것. 영화는 서울의 아파트 둘러싼 인간 군상들의 욕망자동캔들분석
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순한 보금자리가 아니게 된 오늘날 아파트란 공간은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해, 왜 존재하는 것일까.
영화는 찬란하고 활기찬 희망의 노래로 문을 연다. ‘우성’(강하늘 분)은 퇴직금, 원룸 보증금, 엄마의 땅까지 팔아 끌어모은 돈으로 서울 국평 아파트에 입성한다. 하지만 부푼 마음은 오래 가지 않는다. 곤두박질치는 율촌화학 주식
아파트값과 치솟는 대출 금리, 그리고 파혼으로 우성은 순식간에 ‘영끌거지’로 전락한다. 낮에는 회사 일, 밤에는 배달 알바. 불도 에어컨도 켜지 않고 전기세마저 아끼고 아껴 숨이 턱 막히는 대출금 상환에 치이는 하루하루가 반복된다.
하지만 그에게도 남은 희망은 있다. 회사 동료가 코인 리딩방에서 몰래 알아 온 작전이다. 우성은 그의 전부인KT서브마린 주식
집을 급매로 팔고, 계약금을 몽땅 작전 코인에 집어넣는다. 몇 배로 돈을 불려 대출금을 갚고, 배액 배상으로 집까지 되찾겠다는 다짐으로.
[넷플릭스 제공]
그런 우성을 괴롭히는 것은 또 있다. 층간소음이다. 조용히청약
숨만 쉬며 사는 그에게 아랫집은 ‘조용히 해달라’는 쪽지로 매일 현관문을 도배한다. 층간 소음이 괴로운 것은 그도 마찬가지다. 억울한 우성은 한층 한층 아파트를 오르내리며 직접 층간소음의 원인을 찾아 나서지만, 이윽고 온 아파트에서 층간 소음의 범인으로 몰린다. 괜한 소란으로 아파트값이 떨어질까 걱정된 입주민대표 은화(염혜란 분)는 우성에게 돈을 쥐여주며온라인릴게임
상황을 무마시키려 하고, 반대로 위층 주민 진호(서현우 분)는 몰릴 대로 몰린 우성에게 ‘범인’을 찾자며 손을 내민다. 그들의 ‘촉’이 향한 곳은 은화가 사는 펜트하우스. 그들의 생각대로 모든 층간 소음의 원흉은 은화일 것인가.
영화는 강하늘이 펼치는 한 편의 모노드라마 같다. 무대는 84제곱미터. 감독은 라지 포맷의 LF 카메라로 집의 물리적 구조를 이루는 요소이면서 층간소음의 원인이 되는 ‘벽’을 모조리 한 번에 담아냈다. 덕분에 모두 한 프레임에 담긴 천장과 바닥, 인물은 연극의 한 장면처럼 화면에 펼쳐진다. 너무나 익숙한 아파트, 그중에서도 ‘국평’라는 세트장에서 ‘우성’은 있는 힘껏 날아올랐다가, 처절하게 바닥을 찍고, 격렬하게 요동친다.
‘등기권리증’ 외의 삶이 모두 지워져 버린 한없는 무기력함, 치솟는 코인에 온 몸이 떨리는 흥분, 주민들의 비난 속에 커지는 억울함과 분노 등 주인공의 감정은 빠짐없이 ‘무대’ 밖으로 터져 나온다. 배우 강하늘의 ‘연기 흠뻑쇼’(김태준 감독)와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로 세밀한 연출력을 보여준 김태준 감독의 ‘극도의 섬세함’이 만든 결과물이다.
[넷플릭스 제공]
획일화된 국평 아파트라는 배경을 단조롭게만 보이지 않도록 한 노력은 영화와 캐릭터에 입체감을 더한다. ‘우성’의 집은 거실 커튼의 그림자가 바닥에 창살 모양으로 떨어져 마치 감옥처럼 느껴진다. ‘은화’의 펜트하우스의 꺾인 복도들은 속내를 알 수 없는 미묘한 캐릭터의 느낌을 담아낸다. 감독은 “최대한 아파트를 현실적으로 구현을 하되 안의 소품, 촬영 방식, 조명 변화를 통해서 정체된 공간이 아닌 감정을 따라 변화하고 지루하지 않은 영화적 공간으로 느낄 수 있도록 고민했다”고 했다.
영화는 아파트의 수직성을 ‘권력’과 연결 지어 직설적으로 풀어낸다. 층간소음의 영역에서 아랫집은 늘 ‘을’의 위치에 있다. 영화는 우성이 한 층 한 층 계단을 오르는 ‘을’의 여정을 결코 빼놓지 않는다. “아랫집이 윗집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진호의 말은 수직성이 만들어낸 뜻밖의 권력을 대변한다. 입주민대표가 펜트하우스에 산다는 설정은 말할 것도 없다. “층간소음을 조사하면 단순히 윗집, 아랫집 문제를 떠나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더라”. 이처럼 영화는 아파트란 공간이 숨기고 있는 현실과 의미들을 끊임없이 드러내 펼쳐낸다.
[넷플릭스 제공]
다시 공간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김태준 감독이 품었던 아파트란 공간에 대한 생각은 이렇다. “집이 투자처로 변해가는 것에 대해서 청년 세대들이 갖고 있는 힘듦과 어려움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조금 변해야 하지 않을까, 집만큼은 편안한 보금자리 같은 공간으로 남아야 되지 않겠느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엄마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갔던 우성은 다시 서울의 아파트로 돌아온다. 우성은 넣어두었던 등기권리증을 집어 들고, 영화는 조금은 밝아진 집 거실에 서 있는 그를 비추며 ‘서울의 찬가’를 흘려보낸다. 느리게, 그리고 점점 빠르게.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렵니다. 서울에 살고 싶다는 욕망은 멈추지 않는다.
영화도 그것을 안다. 그래서인지 마음 편히 보기만은 힘든 영화다. 마치 ‘내 이야기’ 같아서다. 빚투에 코인까지 곁들이니 숨을 틈조차 사라진 느낌이다. “아파트가 무슨 죄야, 사람이 잘못이지”. 틀린 말이란 생각이 들지만, ‘은화’의 대사가 왠지 마음에 걸린다. 18일 넷플릭스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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