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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順天). 이름 그대로 하늘(天)의 순리를 따르는(順) 땅. 바다와 맞닿은 습지에서 불과 5㎞ 떨어진 곳까지 들어선 아파트는 순리를 거스르는 풍경이었다. 매년 겨울이면 7600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날아드는 곳, 그 132만㎡(약 40만 평) 남짓한 갯벌을 오롯이 지켜내기 위해 순천은 992만㎡(약 300만 평)의 땅에 초록빛을 칠하기로 했다. 짙어가는 도시의 회색빛 공기가 습지의 숨구멍을 막아선 안 된다는 일념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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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정원’을 통해 자연과 인간이 함께 호흡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역사적으로 정원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한국에선 모험과 같은 과제였지만 조바심 내지 않고 천천히, 하나씩 한국의 정원이 할 수 있는 걸 했다. 12년 사이 두 차례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렸고, 그때마다 초록빛에 빨강, 노랑, 파랑, 보랏빛 물감이 더해져 남도의 땅은 다채롭게 물들었다. 바다 건너 릴게임종류
‘잘사는’ 나라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줄 알았던 잘 가꿔진 정원은 한반도에서도 가능한 것이었다. 순천만습지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선 무지갯빛 땅은 이제 철새뿐 아니라 전 국민의 허파가 돼 삶에 지친 이들의 들숨과 날숨을 받아내고 있다.
정원에서의 경험을 순천호수공원으로 이어지는 동문에서 시작해야 할 이유가 있다. 세계적인 조경가 고(故) 온라인황금성
찰스 젱크스의 손길에서 탄생한 ‘봉화언덕’의 장엄함이야말로 순천만국가정원의 정수(精髓)여서다. 동문 입구에 몇 초간 시야를 차단하는 잿빛 구조물을 둔 것은 봉화언덕과 마주치는 순간의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작은 미로 같은 공간을 지나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봉화언덕과 그 앞을 잔잔히 흐르는 호수, 습지의 갈대를 본떠 만든 곡선의 다리가 어우러진 풍경5분봉
은 마치 낙원과 같다.
순천만국가정원이 처음 조성될 때 의정 활동을 한 김인곤 전 순천시의원은 정원이 들어선 땅을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했다. 축복받은 땅에 정성을 더해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이라는 역사를 써내자 주변의 다른 도시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정원산업 육성에바다이야기 온라인
뛰어들었다. 자연이 기꺼이 내어준 선물과 같은 땅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그 땅을 정성스레 보듬고 가꿔낼 줄 아는 진심이 담긴 정원 속에서 휴식 그 이상의 치유가 시작되고 있다.
?초록이 태동한 7월의 순천…별이 뜨면 비밀정원이 열린다?1호 국가정원 지정 10년…생태관광 모범이 된 순천
지난달 26일 전남 오천동 순천만국가정원을 찾은 관람객들이 수국이 만개한 메타세쿼이아길을 따라 걷고 있다. 임형택 기자
순천, 하면 떠오르는 계절은 늦가을, 또는 초겨울이었다. 2000년대 후반 순천만습지는 전남 지역 기차 여행 코스에서 빠지지 않는 명소였다. 한창 ‘내일로(RAIL路)’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람사르습지라면 교과서 어느 한 귀퉁이에서 본 용어 정도로만 여기던 20대 초반의 내게도 흑두루미들이 빼곡히 채운 순천만 연안은 장관이었다. 크고 작은 원 모양으로 습지를 드문드문 뒤덮은 갈대군락지는 순천을 강렬한 금빛으로 기억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10여 년이 지나 다시 찾은 순천의 모습은 생경했다. 분명 그곳은 금빛이었는데,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난 듯 수천 가지 색으로 갈아입은 것이었다. 그 중심엔 정원이 있었다. 도심에서 습지로 이어지는 길목에 계절감이 충만한 형형색색의 꽃과 울창한 나무가 들어섰다. 겨울 철새인 흑두루미의 빈자리에는 흰색 고니, 분홍색 홍학 등 원색을 내뿜는 물새들이 들어차 정원 곳곳에 여름의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순천은 매연을 내뿜던 4차선 도로를 푸른 잔디로 덮었다. ‘그린아일랜드’로 불리는 이 공간은 2023년 순천에서 두 번째로 열린 국제정원박람회를 계기로 조성됐는데, 박람회 폐막 이후 존치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통행 편의를 이유로 차도를 원상 복구해 달라는 일부 시민의 요구가 있었지만, 순천시는 ‘광장이 주는 힘’을 믿고 그린아일랜드를 살려 뒀다. 이곳은 정원 입장권이 없어도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다. 시가 ‘시민의 거실’이라는 별명을 붙인 이유다.
야간 개장한 순천만국가정원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 순천시 제공
정원 내 호수에서 출항해 동천을 따라 운행하는 ‘정원드림호’를 타면 드넓은 그린아일랜드와 그 옆으로 이어지는 오천그린광장을 물 위에서 멀찍이 조감할 수 있다. 초여름 6월의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가운데 50~60대로 보이는 이가 백발노인을 태운 휠체어를 천천히 밀며 산책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황학종 순천시 정원운영과장은 “정원은 저런 분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했다. 울림이 있는 말이었다.
국내 1세대 조경예술가인 정영선이 서울아산병원의 조경을 설계할 당시 “환자든, 보호자든, 의사든, 간호사든, 누구든 목 놓아 울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는 철학을 담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순천만국가정원은 일견 화려하지만, 조용히 울음을 받아내기에 충분한 공간으로 여겨졌다. 수국이 울창하게 핀 작은 숲 어딘가에서, 개울길을 따라 마련된 간이 의자에서, 동천변을 보랏빛으로 물들인 어른 키 높이의 버들마편초 사이에서 심연의 슬픔과 마주하는 순간이 문득 온다. ‘정원워케이션’ 안내센터 한쪽 벽에 붙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에세이집 <눈먼 자들의 국가> 속 글귀가 그랬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순천만국가정원 내 숙박시설인 ‘캐빈하우스’. 임형택 기자
순천은 정원 한편에 큰 텐트 모형의 숙박 시설을 여러 개 지어 꽃과 풀, 강 옆에서의 하룻밤을 가능하게 했다. 편백나무 향이 가득한 ‘캐빈하우스’엔 퀸사이즈 침대와 아담한 책상이 정갈하게 갖춰져 있다. 일과 쉼을 병행하는 ‘슬로우 트래블’을 즐겨 보란 취지다. 어메니티(세안·목욕용품)는 모두 친환경 재료로 만든 고체 비누였다. 순천 주민 공동체인 ‘더감동협동조합’에서 만든 제품이었다. 숙박객들의 공용 공간인 정원워케이션센터엔 정수기와 커피머신이 있었지만, 일회용 종이컵은 없었다. 캐빈하우스 예약 확정과 동시에 순천시에서 발송하는 안내문에 적힌 ‘텀블러를 챙겨 달라’는 문구를 그냥 지나쳐선 안 되는 이유다.
정원에서의 숙박이 빛을 발하는 때는 관람객이 모두 퇴장하고 난 늦은 밤, 그리고 정원 개장 전 이른 아침이다. 자택에서, 또 병원에서 꽃이 만발한 정원을 보며 영감을 얻곤 했던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의 삶에도 이런 장면이 있었을까. 여름을 맞아 만개한 수국밭을 고요히 걷다 보면 어느새 삶을 찬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해가 자취를 감춘 뒤의 야경도 놓치긴 아쉽다. 은은한 조명을 반사한 꽃과 나무가 낮과는 또 다른 빛깔을 내며 조화로운 그림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차분히 내려앉은 정원 속에서의 여름밤은 여느 휴가지에서와는 다른 사색의 경험을 선사해 줄 것이다.?
?"세 번째 국가정원 잡아라"…지자체마다 치열해진 '땅꾸 경쟁'
여름은 가히 ‘땅꾸’(땅 꾸미기)의 계절이라 할 만하다. 공들여 꾸민 땅인 정원의 매력은 자연이 생동하는 여름에 더욱 빛을 발한다. 2015년 전남 순천에서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이 탄생한 이후 휴가철 산으로, 바다로 떠나던 사람들이 하나둘 정원을 찾기 시작했다. 정원박람회가 열린 2023년 한 해 동안 순천만국가정원을 찾은 방문객이 2500만 명을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여러 지방 도시가 순천의 뒤를 잇기 위해 뛰고 있다. 2019년 제2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태화강(사진)이 있는 울산은 2028년 예정된 국제정원박람회 준비에 여념이 없다. 순천만과 같은 수변형 생태 정원인 만큼 수상 교통망 구축 등 인프라 개선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 5월에는 네덜란드 출신 조경계 거장 피트 아우돌프가 아시아에선 최초로 조성한 자연주의 정원을 중심으로 봄꽃 축제를 열기도 했다.
태화강 이후 6년째 제3호 국가정원 지정의 영광을 안은 도시는 나오지 않았다. 부산(낙동강 둔치), 경남 진주(월아산)·거창(창포원), 충남(금강 유역, 아산 신정호, 서천 갯벌)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국가정원 지정을 시·도정 핵심 과제로 선포하고 나섰다. 최대 도시 서울마저 ‘정원 도시’를 비전으로 삼고 정원 브랜딩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순천은 경제 성장기 산업 발달에 뒤처져 있던 도시가 기존 생태 문화의 보전만으로도 자생적인 발전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성공 사례임이 확실하다. 습지와 정원에만 묶이지 않고 도시 전체를 권역으로 삼은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정원 도시의 표준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가정원에 인접한 지역으로 인구가 몰리면서 ‘정원권’이라는 개념도 생겨났다. 머나먼 미래에는 정원의 유무가 집값, 땅값을 좌우하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지자체 간 과도한 경쟁과 의견 수렴 과정을 무시한 무리한 개발 등으로 생길 수 있는 잡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순천만국가정원에서 만난 한 순천 토박이 시민은 봉화언덕을 배경 삼아 이렇게 외쳤다. “이렇게 대단한 정원은 아무나 못 만들어요!”
?컵라면 뚜껑 의자에 앉아 풀멍…우울했던 마음에 꽃이 피었네?서울국제정원박람회…보라매공원 '111개 힐링가든'
서울 신대방동 보라매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국제정원박람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중앙잔디광장에 조성된 ‘장미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서울시 페이스북 제공
“정신 차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한 장면에서 나온 이 말은 정신없는 현대사회에서 경고가 필요할 때마다 끊임없이 인용되고 재생산된다. 하지만 현대인이라면 정신 차리느라 쓴 만큼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일, 소위 ‘힐링’도 이 못지않게 중요하다. 인간의 원초적인 힐링 방법은 자연과의 교감인데, 도시 한가운데서 실천할 가장 쉬운 방법은 가까운 정원에 찾아가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34개 지방자치단체가 ‘정원 도시’를 선언하고 도심 내 녹지 공간 확대에 발 벗고 나선 배경이다.
서울에서는 서남권 주민들의 휴식 거점인 보라매공원이 지난 5월 22일부터 오는 10월 20일까지 약 5개월 동안 ‘힐링 거대정원’으로 탈바꿈한다. 올해로 열 번째 개최된 서울국제정원박람회에 작가들이 제작한 작가 정원(7개), 시민·자치구 등이 참여한 동행 정원(62개), 기업·기관·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작품 정원(33개), 서울의 이야기를 담은 매력 정원(9개) 등 총 111개 정원이 조성됐다. 주제는 ‘서울, 그린 소울(Seoul, Green Soul)’로 자연과 공존하는 ‘초록 쉼표’를 만든다는 비전이 담겼다. 이달 3일까지 370만여 명이 관람해 지난해 같은 기간 보라매공원 방문객의 세 배 이상이 정원에 ‘힐링’하러 찾아왔다.
프랑스 패션기업 디올의 ‘디올 정원’.(왼쪽 사진) 밤에 조명이 켜지면 별빛 속에서 산책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아래는 국내 식품기업 농심이 조성한 ‘인위자연(人爲自然) 정원’. 너구리 캐릭터 조형물 주위에 컵라면을 형상화한 의자를 배치했다. 서울시 제공
한국인이라면 농심이 농부의 마음과 라면을 키워드 삼아 조성한 ‘인위자연(人爲自然) 정원’을 꼭 봐야 한다. 농심은 식물이 빛과 바람, 물을 통해 자연의 에너지를 작은 씨앗에 응축하는 과정에 대한 경외심, 곡식을 키우는 농부의 ‘정직한 마음’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아 정원을 꾸몄다. 방문객은 흐르는 물과 조형물을 활용해 면 반죽부터 꼬불꼬불한 면발이 튀겨지는 소리까지 라면이 제조되는 과정을 형상화한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컵라면 뚜껑 그림이 있는 컵라면 모양 의자에도 앉을 수 있다.
가장 화두가 된 곳 중 하나는 ‘디올(DIOR) 정원’이다. 프랑스의 럭셔리 패션하우스 디올과 국내 1세대 조경가 정영선 씨가 참여한 이 정원은 첫눈에 보면 화려하지 않은 외관에 실망할 수 있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진가가 보인다. 기존 공원 모습을 최대한 그대로 두기 위해 시설물을 최소화하고 200m 플라타너스길 아래 한국 토착 식물과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꽃들을 정교하게 조합해 구성했다. 봄에는 디올이 행운의 상징으로 삼는 은방울꽃과 찔레·참억새·고광나무가, 여름에는 덩굴장미·프렌치 라벤더·옥잠화가, 가을에는 알록달록한 에키네시아·리아트리스·참억새가 피어난다.
프랑스 패션기업 디올의 ‘디올 정원’.(왼쪽 사진) 밤에 조명이 켜지면 별빛 속에서 산책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아래는 국내 식품기업 농심이 조성한 ‘인위자연(人爲自然) 정원’. 너구리 캐릭터 조형물 주위에 컵라면을 형상화한 의자를 배치했다. 서울시 제공
자연에 대한 철학이 돋보이는 정원들도 찾아볼 수 있다. 박승진 작가의 ‘세 번째 트랙’은 보라매공원의 긴 산책길과 겹쳐 ‘제3의 길’을 걷는 행동이 하나의 사유로 이어지게 한다. 김기한 작가의 ‘The Last Meal’은 ‘개구리밥’을 모티브로 기후 위기와 생태 붕괴를 말한다. 조용한 수면 위에 펼쳐진 초록빛 식물은 작지만 강한 생명을 상징한다. 독일 작가 틸 레왈트와 체코 작가 가스 울리슨이 만든 작품 ‘둥지(Nesting)’도 들러볼 만하다. 공원 안에서 모은 나무와 가지, 낙엽 등 유기 폐기물로 만든 이 정원은 ‘생명의 순환’을 주제로 삼았다. 쓰레기처럼 버려졌던 것들이 하나의 조경이 되어 자연과 선순환하는 모습은 뭉근한 울림을 준다.
보라매공원은 서울에서 무더위 속 시원한 도피처로도 손꼽히는 장소로 여름에 방문하면 일석이조다. 공원 전체 면적(40만㎡)의 약 60%인 24만㎡에 달하는 녹지가 인근 아스팔트 위보다 평균 3도, 최대 10도 정도 낮은 기온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이달 초부터 곳곳에 설치된 쿨링포그와 실개천, 그늘 속 덱과 벤치에서도 땀을 식힐 수 있다. 밤이 되면 공원 곳곳에 들어오는 조명으로 낮과 또 다르게 느껴지는 운치는 덤이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과 자연의 거리 좁히기다. 보라매공원에서 매주 화·금요일 반려 식물 상담을 할 수 있는 볼매정원상담소, 매주 토요일 정원 허브로 ‘천연 버물리’를 만드는 매력텃밭정원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다. 걷고, 쉬고, 식물을 보며 생각에 잠기는 ‘식물 멍’을 때리고, 소소한 자연 체험으로 삶을 틈틈이 채워나가는 것이야말로 바쁜 현대인들이 ‘번쩍’ 정신 차리게 되는 지름길인지 모른다.
?연푸른 수국, 보랏빛 도라지꽃…꽃길 산책하며 나만의 컬러 찾기?'컬러가든 투어' 체험기
“정원은 영혼을 위한 약국이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한 말이다. “정원과 서재가 있다면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셈”이라고도 했다. 최근 들어 이 말에 공감해 도시 속 자연에 기대 마음을 달래는 일명 ‘식집사’(식물을 책임지고 기르는 사람이라는 뜻)가 늘었다. 정원은 더 이상 거창한 공간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감각의 쉼터다.
서울 보라매공원의 ‘컬러가든 투어’는 정원의 언어를 오감으로 체험한 뒤, 정원에서 좋아하는 색을 찾고 그 식물과 눈을 맞추며 ‘쉼’을 즐기는 시간이다. 지난 4일 오전 프로그램에 참여해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자신을 소개한 해설사와 함께 공원 곳곳을 걸으며 정원을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는 법을 배웠다. 그는 “식물에 시선을 맞추고 감각에 집중하면 익숙한 풍경이 새롭게 보인다”고 했다. 감각을 곤두세우자 잔디를 밟는 감촉, 흙냄새, 날아다니는 나비의 궤적, 자전거 벨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과 ‘감사합니다’ 인사, 이어지는 박수 소리까지 정원의 존재가 온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원은 입체적인 공간이다. 높고 낮은 ‘층위’를 따라 풍경이 바뀐다. 발밑의 잔디부터 무릎 높이의 화초, 키를 훌쩍 넘는 나무까지. 식물의 배치, 색감, 질감이 달라지며 정원은 시시각각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계절 역시 정원의 풍경을 바꾼다. 여름의 보라매공원은 초록 잎과 붉은 에키네시아꽃이 어우러지지만, 겨울엔 이들 줄기의 색이 주인공이 된다. 세모난 산과 같은 형상의 하얀 꽃을 가득 피운 목수국은 겨우내 그 모습 그대로 갈색으로 시들고, 눈이 내리면 하얀 모자를 쓴다.
‘촉감’과 ‘맛’은 정원을 심리적으로 더욱 가깝게 만든다. 손으로 은쑥 ‘나나’를 쓸어 보면 벨벳처럼 부드러운 느낌이 들고, 사초과 식물류의 잎을 한 움큼 쥐거나 테두리를 손끝으로 쓰다듬으면 건조한 머리카락처럼 꺼끌꺼끌하다. 산목련의 겨울눈을 만지면 솜털처럼 연하고, 토끼풀의 꽃을 따 혀끝에 대면 비릿한 단맛이 남는다. 백리향처럼 보고 만지고 차로 만들어 향을 음미할 수 있는 식물도 있다.
이날 직접 보라색 카드(사진)를 고른 뒤 불로화라고도 불리는 ‘아게라텀’, 여리여리한 꽃잎을 가진 별 모양의 ‘도라지꽃’ 등 그간 몰랐던 보랏빛 식물들을 찾았다. 정원은 인간에게 ‘사랑하는 법’도 가르쳐 준다. 투어에 참여한 한 반려 식물 집사는 “잎이 시들어 축 처진 걸 보면 내가 너무 무심했나 싶고, 물을 자주 주다가 뿌리가 썩으면 관심이 과했던 걸까 반성하게 된다”고 했다. 사랑하는 마음의 균형을 깨닫게 하는 공간이 바로 정원이다.
아직 정원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가까운 공원의 정원 투어부터 시작해보자.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 홈페이지에서는 보라매공원을 포함해 다양한 장소의 정원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 오감을 열고 땅을 밟는 순간부터 정원은 더 이상 타인의 취미가 아니라, 내 마음을 돌보는 법을 배우는 기회의 땅이 된다.
순천=장서우/임동률/오유림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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