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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세미 파이널이었어요. 제 차례가 돼 피아노 앞에 앉았는데 건반 위에 피가 많이 묻어있더라고요. 잠시 멈춘 뒤 피아노를 바꿀까 하다, 그건 좀 아닌 거 같아서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연주했어요.”
지난 3월 열린 프랑스 롱 티보 국제 콩쿠르, 피아니스트 김세현은 이 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우승했다. 당시 콩쿠르에선 2위도 나오지 않았다. “1위와 다른 참가자들의 수준 차이가 극심하다”는 이유로 심사위원단은 2위 자리를 비워뒀다. 당시 김세현은 청중상, 기자·평론가상, 파리특별상까지 가져갔다. 이 한일시멘트 주식
콩쿠르에선 한국인 참가자가 지난 2001년 임동혁이 6개 부문에서 우승했고, 2022년엔 이혁이 공동 우승한 바 있다.
김세현은 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결과를 전혀 기대하지 않고 참가했는데 큰 상과 과분한 관심을 받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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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꽉 차 어른스럽다. 고요한 내면의 소리를 차분히 꺼내놓는 모습과 그를 따라다니는 찬사에 국내 음악계에선 ‘제2의 임윤찬’이라고 입을 모은다. 결선 무대에서의 연주곡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임윤찬이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당시 연주한 곡과 같았다. 현재는 임윤찬과 마찬가지로 미국 보스톤 뉴잉글랜드음악원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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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현은 정작 “(임윤찬은) 존경하는 선배”라며 “보스턴에서 임윤찬 선배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를 들었는데, 이보다 더 잘 칠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세현이 롱 티보 콩쿠르에 참가한 이유가 독특하다. ‘파리의 야경’ 때문이다. 프랑스 음악가들을 공부하던 중 연주차 방문한 파리에서 센 강변을 거닐던 그날은 여전히채권
선명하다.
김세현은 “어둑한데 빛이 깔린 센 강변을 걸으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꼈다”며 “파리라는 도시에 끌려 참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콩쿠르를 마친 후 가장 달라진 점이라면 “우승 이후 연주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다음 달 14일엔 파리 에펠탑 앞 마르스 광장에서 프랑스 혁명기념일을 기리며파칭코사이트
독주를 선보인다. 같은 달 23일에는 유럽 최대 규모 피아노 축제 중 하나인 라 로크 당테롱 페스티벌에 출연한다.
그는 “일정 중 에펠탑 앞에서 펼치는 솔로 연주가 기대된다”며 “라 로크 페스티벌은 워낙 큰 무대라 설레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김세현 [연합]
김세현은 2018년 열한 살에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했다. 예원학교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피아노 연주 석사 과정을, 하버드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 과정을 밟고 있다. 뉴잉글랜드음악원에선 1980년 쇼팽 콩쿠르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한 베트남 출신 당 타이 손, 한국인 피아니스트 백혜선을 사사 중이다. 김세현은 “당 타이손 선생님이 세부적인 요소를 강조한다면, 백혜선 선생님은 큰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아르투르 루빈스타인과 알프레도 코르토다.
그는 삶의 절반 이상을 피아노와 보냈다. 대부분의 연주자가 그렇듯 오직 피아노에 헌신하며 연주자로의 성장에 몰두하고 있다. 또래처럼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순 없지만 그는 “잃는 만큼 음악이 채워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물론 10대 때만 할 수 있는 경험도 필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인문학에 대한 깊은 관심은 김세현의 음악에 깊이를 더한다. 그는 최근 프랑스 작가 보들레르의 시 ‘여행’을 읽었다고 한다. 대부분 클래식 음악을 듣지만, 종종 김광석과 이문세의 노래도 즐긴다.
“글과 음악은 예술가가 아이디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표현 수단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같아요. 영문학 공부가 피아노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연주자가 다양한 콩쿠르에서 우승해도 소위 3대 콩쿠르(쇼팽, 차이콥스키, 퀸 엘리자베스)를 향해 다시 나아간다. 김세현은 “앞으로 콩쿠르에 나갈 생각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엔 “콩쿠르보단 역시 연주가 더 좋다”며 웃는다. 우승 이후 첫 국내 무대는 오는 8월 5일 부산콘서트홀이다. 같은 달 8일엔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리사이틀은 연다.
그는 “1000~2000명의 청중을 놀라게 하는 연주보다 한두 명을 변화시키는 연주가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을 드러내면 놀라운 연주가 나오지만, 자신을 버리면 이상적 연주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고 했다.
“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꾸밈없이 지금 제가 현재 하는 음악을 이야기하듯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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