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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FP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가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전기차 시장의 '일시적 수요 정체(캐즘ㆍChasm)'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 2024년 12월 6일 에너지시장 전문 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1월부터 10월까지 글로벌 전기차 인도량은 1356만대였다. 2023년 같은 기간(1096만대)과 비교하면 23.7% 늘었다.
10월 인도량은 180만대였으니 11월과 12월 인도량이 비슷하다고 가정하면 2024년 전기차 인도량은 1716만대를 기록한다. 그러면 전년도 인도량(1397만대)보다 22.8% 증가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아쉬운 측면이 있다. 2020년부터 2023년 캐즘 현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3년간(2020~2022년) 연평균 성장률은 68.1%였고, 가장 낮은 성장률도 38.4%(2020년)였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성장률을 회복했다고 하기엔 갈 길이 아직 멀다.
■ 점유율 높이는 LFP배터리 = 캐즘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전기차의 가성비가 내연기관차보다 떨어져서다. 전기차가 이전의 성장률을 되찾으려면 내연기관차에 뒤지지 않는 구동 환경(충전설비 등)을 구축하면서도 가격대는 비슷하게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일부 제조사는 2023년부터 이런 노력을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의 테슬라와 중국의 BYD 등이 저가 보급형 전기차로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기아와 현대차도 각각 EV3와 캐스퍼 일렉트릭을 출시하면서 시장의 변화에 발을 맞춰가고 있다. 전기차 제조사들이 이렇게 저가 보급형 전기차를 내놓을 수 있는 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써서 전기차 가격의 40%가량을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을 낮춘 덕분이다.
기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삼원계 배터리인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NCM배터리의 에너지밀도가 LFP배터리보다 높고, 무게도 훨씬 가벼워서 주행거리를 늘리기 쉬웠기 때문이다. 반면 LFP배터리보다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전기차 화재가 이슈로 떠오르고, 제조사들이 저가 보급형 경쟁에 돌입하면서 좀 더 값싸고 안정적인 LFP배터리가 주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참고: 인천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사고 역시 NCM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서 발생했다.]
올해부터 BYD의 전기차가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예정이다.[사진｜뉴시스]
■ 중국 배터리 산업 전성기 = 테슬라는 중국 상하이공장에서 생산하는 모델3와 모델Y에 중국산 LFP배터리를 적용해 가격을 기존 대비 2000만원가량 낮췄다. 여기서 생산한 전기차를 한국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데, 현재 전기차만으로 한국GM이나 르노코리아를 넘보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국내에서는 KG모빌리티가 토레스 EVX와 무쏘 EV5 등에 중국산 LFP배터리를 탑재했다. GM 등 글로벌 제작사들도 전기차 캐즘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중국산 LFP배터리 탑재에 나서고 있다. 이 때문인지 중국 전기차 관련 업체의 질주도 거세다. 중국의 배터리 생산업체들은 자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등에 업고 배터리를 초저가에 생산해 서방세계로 퍼 나르고 있다.
LFP배터리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산 전기차 역시 시장을 넓혀가는 중이다. 우리나라에도 '황사바람'이 불어온 지 오래다. 국내 전기버스의 과반은 이미 중국산이다. 전기상용차 시장도 중국산으로 채워지고 있다. 2025년에는 BYD의 전기승용차가 시장에 본격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산 LFP배터리가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역시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를 기준으로 보조금을 차등 적용하는 등 국산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를 보호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자유무역협정(FTA) 체제에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쉽지 않다. 미국처럼 보호무역을 하거나 중국산 전기차에 상계관세(중국의 보조금 지원만큼 관세를 올리는 것)를 부과하는 것도 어렵다. 중국의 보복무역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 국내 배터리의 과제 =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중국산 LFP 배터리의 질주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방법이 있다. 폐LFP배터리의 친환경적인 처리를 강제하는 생산자재활용책임(EPR) 제도를 도입하면 국내 배터리 업계도 보호하고, 폐LFP배터리의 처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ERP 제도 하나로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무슨 말일까. 하나씩 살펴보자.
사실 가격경쟁력에 기댄 LFP배터리는 초기 시장 진입에는 유리하지만, 환경친화적이지 않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NCM배터리에선 고부가가치 물질인 리튬ㆍ니켈ㆍ코발트를 추출할 수 있지만, LFP배터리는 뽑아낼 물질이 리튬밖에 없으니 재활용 단가가 맞지 않다. 따라서 당장은 LFP배터리를 싼 맛에 쓰지만, 훗날 폐LFP배터리가 넘쳐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중국의 폐LFP배터리 처리 시스템이 베일에 싸여 있다는 점이다. "생산자재활용책임(EPR) 제도에 따라 생산자가 처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진위를 알 수 없다. 일부에선 쓰레기로 취급해 땅속에 묻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NCM배터리는 LFP배터리보다 재활용 가치가 높다.[사진｜연합뉴스]
이런 맥락에서 환경부는 적극적으로 EPR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골자는 중국의 LFP배터리 생산자에게 환경부담을 지우는 거다. 그러면 중국산 LFP배터리의 판매 가격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무역 차별을 하지는 않으면서도 LFP배터리의 가격경쟁력을 낮추는 효과가 생긴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배터리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EPR 제도를 도입하면 폐LFP배터리를 친환경적으로 처리할 수 있어 혈세 투입도 줄어든다. 만약 배터리 제조사가 책임을 지지 못한다면 전기차 제조사에 신차 판매 시 환경 개선 비용을 의무적으로 부담하게끔 하는 방법도 있다. 전기차 제조사를 압박해 배터리 제조사를 규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안타까운 건 환경부가 추후 EPR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방침만 세워놓고 있을 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거다. 이래서는 안 된다. 국내 배터리 업계와 전기차 업계를 위해서라도, 폐LFP배터리 처리를 위한 국민 세금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EPR 제도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이 골든타임일지 모른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autoculture@hanmail.net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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