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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슈퍼맨’이 개봉했지. 현대 사회에 얼마나 많은 ‘맨’들이 태어났는지 생각해 봤어.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가 가속화되며 수많은 경쟁과 불안과 범죄가 사람들을 잠식해 갔지. 20세기 대중문화 산업계는 그에 맞서 슈퍼히어로를 양산했어. 상상 속의 구원자들. 그들의 반대편엔 수많은 빌런들도 있지. 고담 시티란 어쩌면 배트맨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확장판일지도 모르겠어. 누구나 구원을 원해. 나도 구원을 원해. 너도?
보트와 모터사이클 마니아이기도 한 빌리 조엘. 물 위에 뜬 듯한 불안감, 또는 부유감이 오 직장인 커뮤니티 랜 세월 자신의 삶과 음악을 흔들고 또 지탱했는지도 몰라. ⓒ
슬픈 얘기지만 현실 속에 슈퍼히어로 따위는 없어. 그 비슷한 걸 자처하는 인간들은 몇몇 있지. 하지만 그들은 대개 히어로조차도 아냐.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어. 때론 절망의 심연에서 음악이 우릴 들어 올려줄 테니까.
이미연 여기 음악의 슈퍼히어로가 있어. ‘피아노 맨’이라 불리는 사나이. 미국 싱어송라이터 빌리 조엘이야. 그의 삶과 음악을 다룬 다큐멘터리 ‘빌리 조엘: 다 그런 거야’가 최근 미국 HBO에서 2부작으로 공개됐어. 마침 국내 OTT에도 두 편 모두 발 빠르게 상륙했지. 9월 4일부터 열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도 공식 초청 됐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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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투어와 잦은 이동은 팝스타의 숙명.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지. ⓒ
다큐멘터리는 빌리 조엘의 어린 시절부터 음악가로서 커리어 초기의 이야기, 각 앨범과 주요 곡이 탄생한 배경, 갖가지 역경과 좌절, 결혼과 이혼 이야기 등을 마치 한 고졸취업정보 편의 픽션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내.
음악 동료들은 물론이고 전 부인들과 현 부인까지, 갈등하고 갈라서고 다시 합치기도 했던 다양한 인물이 카메라 앞에서 빌리 조엘에 대해 증언하지. 물론 빌리 조엘 본인이 피아노를 치며 하는 인터뷰는 당대의 자료 화면들과 함께 깨알 같은 핵심 재미 요소가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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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헤비메탈에 경도됐다는 빌리 조엘. 그러나 필생의 동반자는 역시 피아노. ⓒ
‘Only the Good Die Young’ ‘She’s Always a Woman’ ‘Vienna’ ‘New York State of Mind’ ‘Just the Way You Are’ ‘The Stranger’ ‘Uptown Girl’ ‘Baby Grand’ ‘The River of Dreams’ ‘Lullabye (Goodnight, My Angel)’…. 수많은 곡들이 빌리 조엘의 파란만장한 생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음악적으론 어떤 영감이 녹아 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주크박스 뮤지컬 이상의 감동이 밀려 와. 그냥 멜로디 좋은, 또는 신나는 음악 정도로 생각한 곡에 이런 스토리가 얽혀 있다니….
커다란 눈망울은 독일을 탈출하며 고초를 겪은 유태인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것. ⓒ
이런 영화의 문제점도 있어. 이를테면 지나친 우상화. ‘빌리 조엘: 다 그런 거야’는 그래도 당사자의 허물까지 상당히 보여주거든. 이런 부분은 향후에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다큐가 제작될 때 참고됐으면 해.
‘아차, 이 곡도 빌리 조엘이었지’ 하며 듣게 되는 수많은 명곡 가운데서 ‘Piano Man’은 당연히 빌리 조엘의 핵심이자 이 작품의 중심이기도 해.
실제로 빌리 조엘이 무명이던 시절, 바에서 피아노 맨으로 일하면서 본 여러 인간 군상에 관해 쓴 곡이야. 그때 이야기가 다큐에 생생히 나오지. 가사 속 인물 묘사의 디테일은 직접 본 이야기였기에 살아 있었던 거야.
제목의 ‘다 그 런 거야’는 ‘Piano Man’ 앨범 수록 곡 ‘And So It Goes’에서 가져온 것. 본인의 음악사를 일별하는, 같은 이름의 155곡짜리 앨범도 최근 나왔어. ⓒ
빌리 조엘의 작사 철학은 단순해. ‘내가 본 것을, 경험한 것을 쓴다.’ 그리고 은유보다는 직접적인 표현을 좋아하고. 작사가 직설적인 데 반해 작곡에는 깊은 설계가 있다는 이율배반이야말로 빌리 조엘의 음악이 끝없이 사람들 맘을 파고드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 클래식 마니아였던 부친의 기억을 좇아 클래식 작곡가 못지않게 음악의 구조적 완성도를 파고든 싱어송라이터.
그 덕분에 오늘도 우린 어떤 곳에서든 미국에 갈 수 있어. 오랜만에 뉴욕으로 돌아가는 그레이하운드 버스 안에서 차창 밖을 바라보거나, 얼큰히 취한 인물들이 둘러앉은 로스앤젤레스의 바 구석에 툭 걸터앉거나.
누가 우릴 구원할까? 그 답은 아무도 모르지. 우리 주변의 수많은 피아노 맨들.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앞에 앉아 있는 당신, ‘일기 맨’이 스스로의 구원자일지도…. 오늘부터 당신만의 다큐멘터리를 써보는 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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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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