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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한 캄보디아는 태국,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 사원인 앙코르와트가 관광지로 유명하다. 현재 캄보디아에는 약 1만 명의 교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연간 약 20만 명의 한국인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그런데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조직이 활개를 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인 범죄조직이 거대한 범죄단지를 만들고 그 안에 한국인 범죄조직들이 들어가 있을 정도다. 실제 최근 한국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는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투자 리딩방, 취업 사기 등 각종 사기 범죄의 새로운 거점이 캄보디아로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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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생성이미지
조폭 출신 KH그룹 배상윤 회장도 체류
지난 5월 경찰은 AI 기반의 딥페이크(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를 결합한 거대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 조직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가상인물을 만동일제지 주식
들어 채팅 앱을 통해 이성에게 접근했고, 연인 사이가 된 것처럼 신뢰를 쌓으며 투자를 유도했다. 이런 수법으로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11개월 동안 피해자 100여 명에게 무려 120억원을 뜯어냈다. 피해자 중에는 장애인이나 중소기업 사장, 주부, 노인 등도 있었고, 적게는 200만원에서 많게는 8억8000만원까지 피해를 보았다.?
시황설명회
사기의 진원지는 국내가 아닌 캄보디아였다. 주범인 총책 강아무개씨(31) 일당은 현지에 있는 건물을 아지트로 활용했다. 여기에 대포폰과 컴퓨터 등을 완비하고 수십 명의 조직원이 각자 역할 분담을 하고 전문적으로 움직였다. 경찰에 따르면 이 조직은 인사팀(비자·월급 관리), 화력팀(유튜브 조회 수 및 댓글 조작), 채터(채팅 담당), 특수팀(유튜브 강의 및주식유료회원
전문가 행세)으로 분업화했다. 조직원들은 가명과 텔레그램만 쓰고 합숙생활을 했다.?
강씨 일당은 지난해 7월 울산경찰청에 피해자 신고가 접수되면서 꼬리가 잡혔다. 경찰은 총책인 강씨와 부인 안아무개씨(29) 등 45명을 입건하고, 이 중 10명을 범죄단체 조직 등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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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 부부에게는 인터폴 적색수배를 내렸고, 지난 2월 포이펫의 한 범죄단지에서 조직원 7명과 함께 현지 경찰에 체포된다. 경찰은 2009년 캄보디아와 체결한 범죄인 인도 협정(2011년부터 발효)을 통해 강씨 부부와 조직원들의 송환을 추진했다. 이들 부부가 자금과 조직관리 등을 총괄했기 때문에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신병 확보가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조직원들의 국내 송환은 원활하게 이뤄졌으나 정작 총책인 강씨 부부 송환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자꾸만 지연됐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한국에 체류 중인 캄보디아 국적의 반정부 인사 송환을 조건으로 내걸기도 했다. 형사범죄자와 특정 정치사범을 지목해 교환을 요청한 것이다. 국제법상 범죄인 인도 조약에는 정치범은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이는 캄보디아 사법당국이 강씨 부부를 한국으로 보내지 않겠다는 의도로도 해석됐다.
그러다 지난달 돌연 강씨 부부가 풀려났다. 경찰은 현지 범죄조직과 사법당국의 뒷거래를 의심했다. 실제 지난 5월 강씨는 한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내 "지금 프놈펜 경찰 정보국에 있다"면서 "두 사람 합쳐 4만 달러(약 5500만원)를 내면 바로 데리고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현지에서는 다른 범죄조직이 브로커를 통해 사법당국에 수만 달러의 뇌물을 건네고 강씨 부부를 데려갔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강씨 부부의 입을 막기 위해 현지 범죄조직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다.?
현지 교민들은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강씨 부부 추적에 나섰다. 그리고 얼마 후 이들의 신병을 확보해 경찰에 넘겼다고 한다. 강씨 부부는 풀려난 후 신분을 숨기기 위해 성형수술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부부의 국내 송환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은신처로 알려진 작업장. ⓒ국제앰네스티
'고수익 알바' 미끼로 한국 청년들 유인
강씨 부부가 주도했던 로맨스 스캠 범죄조직이 드러나면서 조직 내부의 실체가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경찰과 방송매체에 이 조직에 몸담았던 조직원들이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통해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강씨 부부가 범죄 아지트로 사용했던 건물은 중국인 범죄조직이 운영하는 '웬치'라고 불리는 거대 범죄단지의 일부로 드러났다.
강씨 부부는 이곳에 입주해 있으면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사기 범죄를 저질렀다. 이뿐이 아니다. 사기에 동원된 조직원들은 취업사기를 통해 유인한 20~30대의 한국인 남녀들이었고, 이들을 감금한 상태에서 범행에 이용했던 것이다.?
이들의 수법은 치밀했다. 먼저 구직 사이트, 온라인 커뮤니티, 텔레그램 등 SNS에 '숙식 제공, 고액 알바'라는 미끼를 던지고 이걸 보고 연락해 오면 캄보디아로 유인했다. 현지에 도착하면 경비가 삼엄하고 철문과 높은 담벼락에 둘러싸인 웬치로 데려간 후 여권을 빼앗았다. 여기에는 관광객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때부터 방에 감금한 후 부모에게 송금을 시키거나 온라인 대출 등을 통해 돈을 뜯어냈다. 이 과정에서 발톱을 뽑거나 담뱃불로 지지는 고문과 폭행이 이어졌다. 단물을 빼먹으면 그때부터는 사기에 가담시켜 조직원으로 활용했다. 고액 일자리에 속은 청년들이 취업사기의 피해자이자 사기범죄의 가해자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곳에서는 인신매매와 살인, 감금과 폭행, 고문 등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웬치는 수도 프놈펜뿐 아니라 대도시 시아누크빌과 태국과의 국경지역 등 여러 곳에 있었다. 이런 식으로 감금된 한국인들의 숫자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이렇듯 캄보디아에서 취업사기를 당하고 범죄에 가담하지 않으려면 '고수익 일자리 미끼'에 속지 말아야 한다.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도 "텔레그램이나 구직사이트 등을 통한 허위 고소득 채용 광고에 속아 불법 조직에 연루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캄보디아 전역에서 53개의 사기 작업장과 수십 개의 의심스러운 사이트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웬치에 대해서는 "전 세계에서 가짜 구인광고 등을 통해 유인돼 온 피해자들이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전기충격기를 이용한 고문과 구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사기 할당 금액인 월 최소 100만 바트(약 4200만원)를 채우지 못하면 구타와 고문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인 남성이 현지 범죄조직에 감금돼 고문당하는 사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왼쪽), KBS뉴스 방송화면(오른쪽) 캡쳐
현지 교민들, '코리안 데스크' 설치 요구
국내 범죄조직의 캄보디아 진출은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른 뒤 캄보디아로 도피하는 범죄자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현지에서 한국인 범죄자들의 범죄 건수도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캄보디아에서 납치, 감금된 우리 국민의 수가 2023년 21명에서 지난해에는 221명으로 1년 만에 무려 10배 이상 급증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조직폭력배 출신인 KH그룹 배상윤 회장은 배임과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2022년 6월 출국해 동남아 등지를 오가며 도피 행각을 벌이고 있다. 검찰이 인터폴 적색수배를 내렸지만 4년째 황제 도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캄보디아와 베트남 국경 근처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6월에는 캄보디아를 방문했던 유명 여성 BJ(방송 진행자)가 프놈펜 인근 칸달성의 한 마을 연못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범인들은 현지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중국 국적의 부부였고, 고문 의혹까지 제기됐다. 지난해 5월 태국 파타야에서 한국인 남성을 살해하고 드럼통에 시신을 유기한 일당 중 이아무개씨(28)가 인접국인 캄보디아로 밀입국했다가 검거됐다.?
올해 2월 제주도의 한 사찰에서 일어난 유골함 도난사건의 범인들은 중국인들이었다. 이들은 계획적으로 제주에 입국한 뒤 사찰 납골당에 침입해 유골을 훔친 뒤 인근 야산에 파묻고 중국이 아닌 캄보디아로 도주했다. 이곳에서 사찰 측에 전화를 걸고 텔레그램으로 유골함을 훔친 사실을 알리며 거액을 요구했다. 국내 범죄조직의 진출과 범죄자들의 도피, 여기에 자생적인 한국인 범죄조직이 생기면서 캄보디아가 제2의 필리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한때 필리핀에서는 한국인 관광객과 사업가를 대상으로 한 납치살인, 청부살인 등이 극성을 부렸다. 그나마 '코리안 데스크'(한인 범죄 전담 경찰)의 활동으로 주춤해졌다. 그런데 캄보디아가 한국인을 노리는 새로운 범죄 온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인 범죄조직과 중국 범죄조직의 연계는 상당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캄보디아가 국제범죄 조직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은 내부 상황이 반영됐다. 이 나라는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정도를 카지노 등 사행산업으로 지탱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태국·베트남 등의 범죄조직들이 활동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24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캄보디아는 180개국 중 158위(20점)로 최하위권이다. 공무원의 청렴도가 그만큼 낮고, 사회 저변에 부패가 만연해 있으며, 뇌물이 광범위하게 통하는 구조인 것이다. 이처럼 캄보디아는 범죄조직들이 선호하는 여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로맨스 스캠 총책인 강씨 부부의 사례처럼 돈 앞에서는 범죄인 인도 협정 등 국가 간 조약도 통하지 않고, 국제 공조 체제가 쉽게 무너지는 등 범죄자들의 천국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은 현지 교민사회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에는 경찰 영사 2명이 나와 있지만, 늘어나는 범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 때문에 교민들은 한국 경찰을 파견한 코리안 데스크 설치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갈수록 교활하고 악랄한 범죄조직에 맞서 한국인 피해자를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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