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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윤수현, 금준경 기자]
▲전두환씨와 지만원씨. ⓒ연합뉴스
5·18민주화운동을 향한 왜곡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5·18기념재단과 함께 5·18 왜곡을 바로잡고,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조명하고, 시민들의 리터러시 향상을 위한 5·18 왜곡대응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편집자주>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 배우가 연기한 예쁜 자동차 김사복씨가 간첩이었다는 주장부터 북한 특수군이 광주에 침투했다는 음모론까지. 5·18 민주화운동 45년이 지났지만 역사왜곡은 잡초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역사왜곡을 일삼는 지만원·전두환에게 징역형이 내려지고 손해배상이 인용됐지만 이들은 사법부 판단을 무시하고 있으며, 허위 주장이 일반 시민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디어오늘 서울현대스위스저축은행 은 역사왜곡을 막기 위해 5·18기념재단과 함께 관련 판결문 21건을 분석했다. 5·18 역사왜곡 처벌에 소극적이었던 사법부는 최근 관련 문제가 심각해지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신군부의 광주 무력진압을 '국헌문란'이라고 판단한 1997년 대법원 판결부터 지난 2월 “5·18은 김대중이 북한군을 끌어들인 폭동”이라는 댓글에 벌금 100만 원을 선고한 저축은행무직자소액대출 수원지법 판결까지 사법부가 5·18 민주화운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역사왜곡에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살펴봤다.
▲1997년부터 2022년까지 법원이 바로잡은 5·18 관련 허위정보. 클릭 시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리=윤수현 기자, 그래픽=안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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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두환 국헌문란 목적으로 광주 무력진압 지시”
1997년 4월17일.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재평가한 역사적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전두환 군부세력이 내란 달성을 위해 1980년 5월 광주시민을 무력 진압했 경기지방중기청 다고 판단했으며, 광주시민 항쟁을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밝혔다. 전씨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으며 민주화운동 17년 만에 사법 정의가 이뤄졌다. 이 판결은 최근까지 이어지는 5·18 민주화운동 관련 판결의 기본 지침이 됐다.
대법원은 신군부가 최규하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해 광주시민을 무력 진압했다며 “(신군부는) 광주시민 시위를 난폭하게 제압해 대통령과 국무위원 강압·외포(두려워하게 만드는) 효과를 충분히 거뒀다. (광주 무력진압은) 국헌문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직접적인 수단”이라고 했다. 특히 대법원은 전씨에게 학살 책임이 있다고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전두환 등(신군부 세력은)은 살상행위를 지시·용인할 의사가 있었다”며 “광주 재진입 작전에는 광주시민을 살해해도 좋다는 발포 명령이 포함된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8개월 뒤, 김영삼 정부는 '국민 대화합'을 이유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사면했다.
▲ 1996년 8월26일 12·12 및 5·18 민주화운동 사건 선고공판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판 시작에 앞서 서있는 모습. 사진=대한민국정부기록사진집
집행유예로 풀려난 '북한군 개입설' 지만원
대법원 판결에도 5·18 역사왜곡은 오히려 성장했다. 중심에는 지만원씨가 있다. 실제 5·18기념재단 등 5·18 관련 단체가 제기한 역사왜곡 소송의 상당수는 지씨를 대상으로 한다. 군사평론가로 활동하던 지씨는 2002년 8월 동아일보 등에 <대국민 경계령! 좌익세력의 발악이 시작됩니다>라는 광고를 게재하고 “광주사태는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원들이 순수한 군중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이라고 했다. 1심 법원은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지만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집행유예 판결에도 역사왜곡은 계속됐다. 지씨는 2003년 9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규탄대회에 참석해 “광주사태가 민주화운동으로 채색됐다”고 했으며, 2005년 3월엔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광주에 대해 “야만의 도시” “무법천지”라 비난했다.
특히 법원은 지씨에게 무죄라는 '면죄부'를 줬다. 지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북한 특수부대가 1980년 5월 광주에 침투했다는 게시글을 올려 5·18 단체로부터 고발당했으나 수원지법 안양지원이 2011년 “구체적인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 “(5·18에 대한)법적·역사적 평가가 확립됐기 때문에 지씨 주장으로 사회적 평가가 바뀌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내렸다.
북한군 개입설이 본격화된 것도 이 시점부터다. 지씨는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들이 사실 북한 특수군이었다는 '광수설' 뿐 아니라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도운 택시운전사 김사복씨가 간첩이며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가 북한과 공모했다고 주장했고, 인터넷언론 뉴스타운과 일간베스트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관련 주장이 확산됐다.
20년 만에 지만원 '실형'으로 단죄 내린 법원
지씨에게 '실형'이라는 단죄가 내려진 것은 2023년 1월, 그의 역사왜곡이 시작된 지 20년 만이다. 지씨는 광수설·김사복 간첩설 등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됐으며 서울중앙지법은 2020년 2월 “수차례 징역형 집행유예,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지만 범행을 저질렀다.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1·2심 재판부는 지씨가 고령이고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며 법정구속을 연기했지만 2023년 1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온 뒤 교도소에 수감됐다.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도 이어졌다. 지씨가 5·18 관련 단체와 유공자들에게 낸 손해배상금은 이자를 포함해 총 2억2200만 원에 달한다. 광주지방법원은 2017년 8월 지씨와 뉴스타운에 8200만 원 배상 판결을 내리면서 “민주화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들을 북한특수군으로 지목해 정신적 고통을 겪게 했다”, “(광수설은) 신빙성도 상당히 부족해 악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여지가 상당하다”고 했다. 또 광주지법은 2018년 10월 '5·18 영상고발' 책을 통해 '광수설'을 주장한 지씨에게 9500만 원 배상 판결을 내리며 “북한군 개입설이 허위라는 이유로 패소했음에도 재차 허위 주장을 했다.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가치를 폄하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씨에 대한 배상액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광주지법은 지난해 4월 지씨가 자신의 책 '조선 5·18아리랑 무등산의 진달래 475송이'에서 광수설 등을 주장했다며 9000만 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광주지법은 판결문에서 “(지씨는 유사한 사건으로) 손해배상판결이나 형사판결을 받았음에도 (같은 주장을 담은) 도서를 발간하고 있다”며 반복된 명예훼손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 ⓒ연합뉴스
'전두환 회고록' 역사왜곡에 법원 “피해자 행세”
전두환씨도 회고록을 통해 5·18 역사왜곡을 이어갔으며, 법원은 징역형을 선고하는 등 엄정 대응을 이어갔다. 전씨는 2017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계엄군의 헬기 기총소사를 목격했다고 밝힌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광주지법은 2020년 11월 전씨에게 징역 8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아픈 현대사에 대하여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피고인에 대하여 실망감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이듬해 전씨가 사망하면서 형사재판이 중단됐지만, 민사재판을 통한 책임 추궁은 끝나지 않았다. '전두환 회고록'에 대한 손해배상 재판은 이어지고 있으며, 전씨 유족이 5·18기념재단 등에 70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1·2심 판결이 나와 대법원 확정판결만 기다리고 있다. 재판부의 비판 수위도 높아졌다. 1심 재판부는 “표현의 자유 한계를 초과해 5·18 민주화운동의 성격을 왜곡했다”고 밝혔으며, 2심 재판부는 “억울하게 십자가를 지게 된 양 피해자 행세를 하면서 진짜 피해자인 민주화운동 세력을 비난하고 있다”, “'북한군 개입설'을 새삼 끌어들여 민주화운동에 대한 논의를 구태의연한 이념 대립의 소용돌이 속에 밀어 넣고자 했다”고 했다. 최경훈 5·18기념재단 기록진실부 팀장은 미디어오늘에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판결이 나오고 있는데, 그 과정은 너무 지난하고 오래 걸렸다”며 법원이 신속하게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2월15일 광주 금남로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에서 배포된 스카이데일리 특별판 신문과 홍보물.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지만원에서 스카이데일리·일반 시민으로 이어지는 역사왜곡
그러나 연이은 사법부 판결에도 역사왜곡은 반복되고 있다. 지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사회적 평가가 바뀌기 어렵다”고 밝힌 서울중앙지법 판단과는 정반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대표적이다. 스카이데일리는 5·18 북한군 개입설 등 음모론을 담은 특별판을 발행해 지난 2월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에 배포했다. 스카이데일리의 5·18 관련 악의적 보도는 지난 2년간 239건에 달한다.
왜곡된 역사 인식은 일반인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5·18 역사왜곡 게시물을 올려 벌금형을 받는 누리꾼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인천지법 부천지원은 지난해 11월 “5·18은 북괴의 내란 폭동”이라는 글을 올린 누리꾼에게 5·18특별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수원지법도 지난 2월 “5·18은 김대중이 북한군을 끌어들인 폭동”이라는 인터넷 기사 댓글을 단 누리꾼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최경훈 팀장은 “최근 5·18에 대한 눈높이가 올라가고, '역사를 왜곡하면 안 된다'는 시민들의 자각이 있는 것 같다”면서도 “광주지검은 최근 SNS 등에서 5·18 역사왜곡을 한 누리꾼 9명을 기소했는데, 재단이 자료를 수집하고 광주시가 조사를 요청한 건 4년 전이었다. 결과가 나오는 건 다행이지만,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수사기관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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