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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서울, 극장도시의 탄생 박해남 지음 휴머니스트
“평균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서울의 30평형 아파트를 사려면 한푼도 쓰지 않고 32년을 모아야 한다.” “소위 ‘국민 평형’이라는 서울 지역 84㎡ 아파트에 청약하려면 현금 9억원이 필요하다.”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보통의 국민이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기는 점점 ‘하늘의 별 따기’가 돼가고 있 부가세신고 다. 정부는 주거안정을 위해 대출 규제에 나섰지만, 집을 사려던 사람들은 대출이 줄어든다며 오히려 불만을 제기한다.
박해남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의 신간 ‘1988 서울, 극장도시의 탄생’은 오늘날 이 같은 한국 사회의 시스템은 그 태동이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진단한다.
서울올림픽은 그동안 군사독재정권의 ‘3S( 아르바이트 야간수당 Sport·Screen·Sex)’ 정책이나 ‘우민화론’의 일환으로 해석돼왔다. 하지만 저자는 서울 올림픽이 사회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거대한 ‘공연’이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신군부는 권력을 행사하는 리바이어던이고, 드라마투르기(극작법)를 활용해 올림픽이라는 공연을 기획했다는 분석이다. 저자에 따르면 극장주이자 연출자였던 군사정권은 시민을 건전하고 경기도 아파트 전세 근면한 배우로 훈육하고, 도시를 스펙터클한 무대로 연출해 전 세계에 선보이려 했다. 그러면서 올림픽을 관람할 외국인을 가상의 리바이어던으로 앞세워 권력의 행사를 정당화했다.
그 바탕에는 ‘국민의 습속 개조’와 ‘도시의 경관 개조’라는 사회정치적 목적이 깔려 있었다. 서울을 보여주되 있는 그대로의 국민과 환경이 아니라 ‘정상적인’ 모습만 보 2011정부학자금대출 여줘야 했다. 깡패, 부랑인, 윤락여성 등은 ‘사회악’으로 규정돼 정화의 대상이 됐고, 무대에 오르지 못하도록 도시 밖으로 내쫓기고 격리 시설에 갇혔다.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살고 있던 무허가주택도 사회 불안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군인들은 발전의 서사극을 보여주기 위해 아파트라는 무대 장치를 택했고, 서울 강남·마포 등에 아파트를 건설했 회생절차주가 다. 이 과정에서 이미 아파트 가격은 한 달 임대료가 도시 근로자 월급의 70%를 넘을 정도로 높아 최소 중산층 이상이 돼야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돼버렸다. 주택은행의 융자나 사회보험은 소득과 교육 수준이 높은 소수에게만 돌아갔고, 이들만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대학생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군부는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7~8평의 임대주택을 맛보기 식으로 제공했다. 이로써 서울은 중산층의 최신식 아파트와 빈민의 임대주택으로 나뉘게 됐다.
한강까지 개조하며 서울 올림픽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 결과 서울은 과시와 연출이 일상인 ‘극장도시’로 재구성됐고, 사회계약이 아닌 공연계약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 질서인 ‘88년 체제’가 본격화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88년 체제는 ‘87년 체제’, 즉 민주화 이후의 체제가 남긴 공백이자 지금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갈등의 근원 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공연계약은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됐다. 1993년 대전 엑스포는 서울에 이어 대전도 극장도시로 만들었고, 2002년 월드컵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준비됐다.
군사 정권은 막을 내렸지만, 서울 올림픽의 드라마투르기는 사회 속으로 확산했다고 저자는 통찰한다. 1980년대 배우로 동원됐던 이들은 ‘중산층’이라는 자의식 아래 스스로 사회적 삶을 연출하려 하고, 많은 도시가 서울 올림픽의 스펙터클을 재연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산층 아파트 거주민들이 자신들의 아파트와 임대아파트 사이의 통행을 차단하려고 울타리를 설치했다. 자녀들이 다른 학교를 다니도록 분리시키는가 하면, 분리되지 않은 학교에서는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학생을 멸칭으로 부르는 일이 현재까지도 이어져 왔다.
경제 성장과 민주화에도 사회 구성원들이 여전히 무대에서 고립되거나 추방당할까 봐 두려워한다는 사실은 씁쓸함을 남긴다.
책은 지난해 겨울부터 한국 사회가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은 사회계약이 아닌 공연계약에 기초한 88년 체제가 사회적 갈등과 분열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방증한다고 이야기한다. 2020년대를 넘어가며 많은 사람이 87년 체제의 한계와 이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를 논하고 있지만, 88년 체제의 한계야말로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과제라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에 ‘공연적 생존주의’가 만연해 있고, 사회 구성원들이 전시적·과시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지적은 자신을 중·상류층으로 인식하거나 중산층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언짢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공연계약을 어떻게 사회계약으로 전환할 것인가, 관객석에 앉아 무대 위의 배우를 평가하는 리바이어던을 어떻게 사회 구성원의 삶의 무대를 지탱하는 리바이어던으로 전환할 것인가 등의 질문을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시점”이라는 저자의 말은 우리 사회의 모두가 고민해 볼 지점이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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