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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일이다. 한국계 국외 작가는 숫자만이 아니라 존재감도 자못 두드러진다. 한 사례가 흥미 하나은행대출조건 롭다.
최근 국내 소개된 미국 작가 리디아 유크나비치(62)의 ‘물의 연대기’에 이런 삽화가 들어 있다. 성장하는 여성, 인간으로서 맞닥뜨린 숱한 실패와 배반에 관한 적나라한 자전 에세이(임슬애 옮김, 문학사상). 리디아는 썼다.
“내가 왜 문학박사 학위를 땄는지 알고 싶은가? 오리건대학 대학원의 소설 창작 워크숍에서 이 가지급금인정이자계산 창래가 내 글을 두고 ‘진부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 너, 깜깜한 술집 뒷골목에서 한번 보자. 우쭐대는 면상을 제대로 갈겨줄 테니까. 이 재수 없는 새끼야.”
일화는 물론 훈훈(?)하게 갈무리된다. 과거 읽었던 이창래 작가의 작품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설명하기도 힘들다”는 고백과 함께, 그가 리디아로 하여금 “이창래의 말라빠진 엉덩이 별내리치안위버 를 걷어차 줄 수많은 작가를 공부”하게 했고, ‘물의 연대기’의 발단에도 기여했음을 확인시키기 때문이다.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소설에 매료되어 직접 메가폰을 잡은 뒤 올해 칸영화제에 내놓았으니, 이창래도 엉뚱하게 조연한 셈이다.
최근 두 명의 한국계 작가가 여기로 보내온 소설이 실로 매력적이다. ‘한국적 이방인’의 정체성을 다룬 서구 패턴수학 문학 계보에서, 올돌한 성취와 함께 올해 데뷔 30돌을 맞은 이창래(60)를 한 기점으로 본다면, 오스트리아 작가 김안나(48), 미국 작가 폴 윤(45)은 ‘포스트 이창래’이면서, 디아스포라의 무궁한 감각과 의식을 그들의 문체로 생동시킨다는 점에서 ‘비욘드 이창래’라 할 만하다.
장편소설 ‘어느 아이 이야기’(2022)는 김 작가 자신의 경남자동차담보대출 정체성이 밴 인물을 주인공으로 직조한다. 한국계 오스트리아 여성 작가 프란치스카(프랜)는 미국 위스콘신주 중소도시 그린베이 소재 대학의 ‘체류 작가’ 초청으로 한철 머문다. 위스콘신 내 가장 오래된 유럽인 정착지, 그러나 전부터 인디언 부족이 살았던 오대호 연안. 프랜은 노부인 조앤의 어둡고 적막한 집을 반긴다. 남편 대니의 부재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시선’ 하나로 소설은 소요하기 시작한다. 그린베이에서 “온 사방을 통틀어 하나뿐인 아시아 여성으로 사는 건 힘들” 거라며 프랜의 생김새를 “관찰”하는 조앤의 시선. 동시에 조앤은 “그린베이에 있는 단 한 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바로 남편 대니였다고 말한다. 보건대 넘나들 수 없는 그 정체성의 경계에서 기인했을 법한 외로움을 조앤은, 요양원에서도 거의 유일한 흑인으로 입원 중인 대니를 두고, 토로하는 중이다.
외로움과 적막이 왜 대니가 아닌, 조앤의 것인가. 프랜은 무엇과 절연하고자 적막을 “즐겼다” 하고 또 좇는가. 소설은 이 두 질문을 던질 때 크게 증폭한다. 보지 않으려 하지만 보는 자(조앤)와 보이지 않으려 하지만 보이는 자(프랜)의 시선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1953년 7월 밤 그린베이에서 사내가 태어난다. 20살 미혼모 캐럴은 입양시키고자 한다. 생부를 조사해 양부모를 찾기까지 종교단체 여성 빙클러에 일임된다. 출생 40여일 뒤 다들 실색하고 말았으니, 아이 대니는 “검둥이의 특징과 더 부합”하는, “그린베이에서 태어난 최초의 물라토(라틴 아메리카에서 불리는 흑·백인 혼혈)였다.” 지극히 우생학적 관점으로, “검둥이 아이” 대니는 비교 관찰되고 기록된다. 그의 친부가 ‘추적’되지만, 미결에 그친다. 때로 범죄자처럼.
대니의 친부를 이제라도 조앤은 찾고자 한다. 병을 앓는 대니를 위해서다. 소설은 한편으로 대니의 출생 비밀을 드러내고, 한편 조앤의 부탁으로 그 비밀에 접근하게 되는 프랜을 새삼 과거의 자신과 대면케 한다.
흑인 부모 밑에서 흑인 친구들과 어울렸다면 대니의 삶은 어땠을까. 대니를 “빛”으로까지 여긴 조앤의 진정 어린 이 질문은 그러나 대니가 누구이든 대니 안에서 ‘흑인’을 보고 마는 자신의 ‘시선’을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빈에서 태어나 유럽인을 자처한 프랜은 거꾸로다. 시선을 감추고 삼킨다. 오스트리아인 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라며 유럽 정체성을 곧이 이식받았으니 응당 “다른 아시아 사람들만큼 아시아적”이지 않다고 자부한다. 하나 “외모가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말”이 반박되면 한기가 든다. “당신이 거울을 볼 때마다 (…) 어머니가 거기 있는 거”라는 조앤에게 “거울을 볼 때마다 나는 나를” 본다 맞서지만, 소설 말미 조앤은 화가(빙클러의 딸)가 “감정 이입”해 그린 자신의 초상화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만다. (그 순간 마음이 “추락”이라 묘사된다.) 알고 보니 소싯적 생김새로 어머니와 비교되고 동일시되는 걸 참을 수 없어 배척했던, 그래서 결국 서울로 돌아간 그 어머니의 얼굴.
종의 경계는 ‘시선’으로 먼저 포착되어 벗어나기 어렵고, 그로 인한 관념과 차별은 아주 오래된 습속이란 게 소설의 알짬인바, 21세기에도 변치 않는 실체와 은유로서의 시선, 즉 ‘바라봄’의 광포한 힘과 한계에 천착한다는 점에서 돋을새김된다. 내면, 언어, 문화, 관계의 맥락에서 거개 다뤄지는 소수자·이민자 서사와는 외려 다른 결이다. 소설 후반엔 반전도 있다. 나치 우생학에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 빙클러의 과거다. 그럼에도 작중 빙클러든 트럼프든 때때로 등장하는 소품에 불과하다. 조앤의 말인바, “보지 않으려면 눈이 멀어야 했”다는 ‘대니’와 다른 줄 알았던 ‘프랜’들이 지금 엘에이(LA)에, 세계 각지에 여전히 가득하다는 게 진실이기 때문이다.
저들이 ‘생김새’로 포위되고 억압받고 결국 축출된다면, 저들의 어떤 이야기는 폴 윤의 단편집 ‘벌집과 꿀’(2023)에서 발견될 것이다. 17~21세기, 유럽, 일본, 러시아 등지로 경계 없이 확장된 시공간에서의 경계인 정체성, 말하자니 디아스포라 한국인의 비애와 욕망을 아름답게 서사화한다. 문장은 짧고 압착되어, 문장과 문장 사이 아득한 시공간이 담겨 있다. 특히 표제작은, 19세기 연해주 황무지에 갓 삶을 일구는 고려인 15여 가구를 감시하는 러시아 군인의 시선을 통해, 슬프지만 끝내 패배하지 않는 ‘디아스포라 신화’의 시작을 알린다. 의도치 않게 전과자가 된 뒤 낯선 마을에 다시금 정착해가는 ‘보선’도 마찬가지다.
어느 아이 이야기 l 김안나 지음, 최윤영 옮김, 을유문화사, 1만8000원
벌집과 꿀 l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엘리, 1만7000원
머물기만 한 이들은 감각할 수 없겠다. 갈망 없이도 상실하므로 갈망이 공포가 되는 지경, ‘시선’을 포기하는 지경.
두 권의 소설은 원서를 보고 싶을 만큼 문체가 유려하다. 번역 덕분인가. 다른 언어로 출발하여, 한국어로 이처럼 고요하고 쓸쓸하게 착지한 것을 보면 언어의 거리가 문법, 단어, 억양 따위만의 거리는 아닌 모양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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