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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인터넷 국립보건원이 비운 자리를 차지한 건 시민사회단체들이었다. 2012년부터 사회적경제·마을공동체를 내세우는 단체들이 대거 입주했다. 당시 서울시장 박원순이 시민단체 출신이란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시민사회의 새로운 흐름을 실험하고 사회를 혁신한다는 뜻에서 이곳을 ‘혁신파크’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밖에서 보기엔 쉽게 말해 ‘시민단체의 거점’이었다. 1 무료파산신청 0여년이 흘러 다시 서울시장이 오세훈이 되자 분위기가 급격히 바뀌었다. 시민단체를 몰아내더니 건물 일부마저 아예 철거해버렸다. 대신 세무서와 시설관리공단이 들어섰다. 종국에는 이 땅을 민간기업에 팔아 ‘서울창조타운’을 세우는 게 목표라고 한다. 용적률 등 인센티브를 잔뜩 얹었지만, 정작 사겠다는 기업은 나타나지 않았다. 쫓겨난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한국자산관리공사 이전 ‘시민의 공간’을 되찾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혁신파크 공공성을 지키는 서울네트워크’가 지난해 3월5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혁신파크가 무엇이 되면 좋을지 이야기하려는 건 아 여유자금굴리기 니다. 동네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저 이곳의 공원 기능이 유지되길 바랄 뿐인데, 진짜 문제는 이런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도통 없었다는 점이다. 솔직히 식상한 정치적 구호가 돼버린 ‘강북 균형발전’ 운운하며 내세운 창조타운에는 기대감이 별로 크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전의 혁신파크를 옹호하고 싶지도 않다. 시민단체가 말하는 ‘시민’의 범주는 왠지 그리 넓 월세복비계산법 어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장기전세주택(시프트)이나 조부모부터 손주까지 함께 거주할 수 있는 ‘세대공존형 임대주택’을 짓는다는 발상도 나온 적 있다. 언제 또 공공주택 후보지로 소환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민간개발이니 공공택지니 하는 것들은 대체 누구의 바람일까? 평소 좋아하는 장소가 무엇으로 바뀌든 가만히 지켜보면 되는 것일까?
그래서 찾아봤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관련 공청회를 한 번쯤은 열었을 게 틀림없다. 지난해 11월7일 오후 4시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구)국립보건원 부지 지구단위계획 변경 주민설명회’를 연 적이 있다. 그날은 목요일이었다. 평일 오후에 이런 설명회를 열면 대체 어떤 주민더러 오라는 걸까.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알아서 직장에 휴가를 내고 참석해야 하는 걸까. 정말 주민의 의견을 듣고 싶다면 주말이나 적어도 퇴근시간 후에 여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데는 대단한 이유가 있지 않을 것이다. 단지 공무원들도 저녁이 되면 퇴근하고 주말에는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앞서 9월25일엔 민간 매각 절차 관련 설명회를 개최했다. 건설사, 금융사 같은 기업이 대상이어서 출입을 제지당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행사장 앞에서 분통을 터뜨렸던 모양이다. 여기도 일개 주민이 의견을 전달하러 갈 만한 곳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서울시가 서울혁신파크를 민간에 매각한 다음 유치하겠다는 서울창조타운 상상도. 서울시 제공
다행히 온라인으로도 얼마든지 자기주장을 펼칠 수 있는 시대다. 서울시 대표 시민제안 창구라는 ‘상상대로 서울’ 웹사이트에 접속해봤다. 2024년 1월17일에 이미 ‘개발이 좋을지 공원 유지가 좋을지 시민들에게 의견을 묻는 과정을 꼭 거쳐달라’며 나와 똑같은 바람을 전한 사람이 있어 반가웠다. 다만 그 밑엔 달린 건 ‘계획수립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열람공고 등 관련 절차 진행 예정임을 알려…’라는 공무원 특유의 무미건조한 답글뿐이었다. 큰 틀의 계획을 다 짜놓고 ‘보여는 드릴게’ 식의 열람공고나 모두가 일터에서 바쁘게 일할 시간에 여는 주민설명회가 공무원들이 말하는 ‘관련 절차’란 말인가. 과연 이것을 납득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이런 불통으로는 제대로 된 행정을 할 리가 없다. 이 땅이 지역에서 갖는 맥락과 의미를 제대로 알 수가 없을 테니까. 서울시는 이제 와서 여기가 20년 동안 유휴부지였다고 말한다. 유휴부지? 강아지와 함께 콧바람 쐬고, 잔디밭 위에 돗자리 펴고 도시락 까먹고, 종종 플리마켓이나 마을잔치가 열리던 공간이 유휴부지란 말인가. 서울시는 굳이 이곳을 20여년 전에 떠난 ‘국립보건원 부지’라고 부른다. 그나마 공원처럼 근처 주민에게도 개방됐던 혁신파크 시절은 싹 지워버린 것이다. 이렇게 무신경하게 접근하니 배드민턴 치던 자리가 하루아침에 세무서의 주차장이 되고, 건물 철거 등 공간 개조 사업을 한답시고 몇년 동안 공사판을 만들어 놓는다. 탁상행정이 다른 게 아니다. 공무원들이 이곳에 몇번만 발걸음했어도 이럴 수는 없다. 물론 안 그래도 바쁠 것을 잘 알기에 그런 수고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민 참여가 필요하다는 거다. 공무원들은 귀만 열면 된다.
2022년 10월15일 서울혁신파크 잔디밭에서 열린 가을소풍 행사. 허남설 기자
가만 보면 불통은 우리 도시 행정의 뿌리 깊은 속성이다. 서울시를 출입할 때 도시계획위원회의 운영 방식에 의문을 품은 적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계획위원회는 재건축·재개발, 리모델링, 공원·녹지 조성,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용도지역 설정 및 변경 등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조직이다. 이런 결정 하나하나가 시민의 일상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광주시를 빼고 다른 모든 광역지자체가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조례에 못 박아 놓았다. 회의록마저 제한적으로 볼 수 있다. 도시계획위원회가 안건을 심의한 날짜와 장소, 결과 등을 기록한 회의록은 대다수 광역지자체에서 30일 이후에나 공개된다. 사실상 교수, 연구원, 공무원, 지방의회 의원, 건축사 등 몇몇이 모여 결정하면 그걸로 끝인 셈이다.
더러는 이해당사자가 껴들면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고, 항의성 민원이나 소송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이런 불통의 이유로 들기도 한다. 이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미국 뉴욕시 도시계획위원회는 ‘공공부문의 모든 회의는 일반 대중에 공개되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유튜브로 회의 내용을 공개한다. 일본 도쿄도 도시계획심의위원회도 회의 공개를 원칙으로 삼고, 회의 한 달 전부터 참관인을 모집한다. 민원이나 소송 가능성이 유독 한국에만 존재할 리는 없지 않은가. 국내에서도 광주시가 2023년 9월부터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를 공개하도록 조례를 바꿨고, 광주 광산구는 지난해 7월부터 회의를 온라인으로 생중계하고 있다. 운영 방식은 정하기 나름이다. 우리의 도시 행정이 불통을 택했을 뿐이다.
현재 서울혁신파크는 늘어난 주차장과 2025년까지 예정된 건물 철거 공사로 곳곳에서 길이 막혔다. 허남설 기자
요즘 서울시의 핵심 의제는 ‘규제 철폐’인 모양이다. 용적률 상한을 높여 재개발·재건축을 촉진하고, 도쿄 미야시타 파크처럼 입체공원을 조성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들을 1호니 2호니 하는 식으로 순번까지 붙여가며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이참에 ‘국립보건원 부지’에 대한 규제 철폐도 제안한다. 용적률만 규제가 아니다. 주민이 공원을 마음껏 활보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도 엄연히 규제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할 규제는 도시 행정의 고질적인 불통이다. 진짜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주말의 공청회나 각종 위원회 회의의 유튜브 생중계, 이런 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업무 진행이 좀 더뎌지고 공무원이 피곤할 수는 있다. 그래도 멀쩡한 공원을 하루아침에 유휴부지로 만들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행정보다는 낫다.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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